63. 뭐 어때 지금은 지중해니까

- 마요르카 자전거 여행 -

by 임선영
@Palma de Mallorca, Spain


오늘은 자전거를 꼭 타보겠다며 아침부터 무장을 하고 나섰다. 항구를 따라 걸으며 자전거를 빌리러 가는 길, 웅장하고 거대한 국립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은 팔마의 우체국을 지나쳤다.


어렸을 적부터 우체국이 익숙했던 나는 종종 우표를 사러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웅장하진 않더라도 오래된 도서관 같은 모습을 가진 우체국이라면 찾아가는 발걸음이 더 잦아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택배와 문자로 대신하게 되는 안부 인사를 몇 번쯤은 우체국에서 편지를 보내는 일로 대신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해안선을 따라 위치한 곳에서 5유로에 자전거를 빌렸다. 천천히 걸어가는 것보다 빠르지만 여유롭게 굴러가기에 좋다. 그동안 튼튼해진 다리로 자전거쯤이야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앞을 향해 달렸지만 두 달 동안의 여행 때문인지 다리에 갑작스레 무리가 왔고 오르막길도 아닌 길 위에서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어 자전거를 끌고 걸어야 했다. 그리고 평지에서 다시 앉아 아주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이어지는 내리막길, 뜨거운 햇빛에 흘린 땀을 식혀주는 바람과 펼쳐진 전망대 앞 지중해가 보인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지중해 발레아레스는 사이다처럼 맑고 투명하다.


빠져들듯 구석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밑으로 내려갔다. 해변이라고 볼 수 없는 곳이지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햇빛 속에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 옷을 입고 있는 내가 이상할 정도로 다들 태연하게 돌아다녔다. 아주 조금 망설였지만 뭐 어때 지금은 지중해니까,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지중해에 몸을 부딪쳤다.


뜨거워진 몸을 식히기에 딱 좋은 온도. 파도가 칠 때마다 다가오는 투명한 거품이 이제 막 뚜껑을 열고 잔에 따르는 시원한 사이다 같다. 찰랑이는 물에 비쳐 반짝인다. 지평선을 따라 펄럭이는 요트를 바라보며 다시 몸이 소독되기를 기다렸다.

시에스타가 지나고 자전거를 반납할 시간까지 마요르카 대성당을 지나 반대편 등대를 향해 달렸다. 해가 지려고 하니 점점 느려지는 자전거 속도. 실은 시간이 이만큼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라나다에서 마요르카 비행기를 갑자기 구했을 때에도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마요르카를 떠날 시간이다.


전혀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다. 전혀. 그저 아침에 눈을 떴고 밤에 잠이 들었으며 기분 좋은 날 웃었고, 아픈 날 울었을 뿐이다. 아직 한국에 가려면 아직 멀었고 고작 유럽을 떠나 호주로 이동할 뿐인데 괜히 기분이 이상하다.


호스텔 부엌 창문에 걸친 성당과 초승달. 지중해를 느꼈던 낮과 다르게 밤에는 딱 가을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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