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환상 속 인어처럼

- 브리즈번 사우스뱅크 여행 -

by 임선영
@Brisbane, Australia


한참을 자고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겨 친구 일 끝나는 시간에 맞춰 시티로 나섰다. 일이 끝나는 시간이라 해봤자 늦어도 다섯시, 빠르면 세시인 이곳에서 야근 후 찌들어있는 모습도 칼퇴근을 위한 몸부림도 상상할 수가 없다. 일을 마치고 나의 시간을 혹은 가족과의 시간을 갖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래서 그토록 외국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보이는 게 다가 아닐 테지만 일을 그만두고 떠난 여행이라 호주에서의 삶이 쾌적해보였다.


빅토리아 브리지를 건너 사우스 뱅크에 들어서자 브리즈번이 우리를 반긴다. 친구의 이니셜 BR과 나의 이니셜 IS가 나란히 붙어있는 B.R.I.S.BANE을 보며 우리는 브리즈번에서 만날 운명이었다며 깔깔댔다. 그 친구와 웃을 수 있는 이런 사소함이 얼마나 필요했는지.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드디어 만났다고 인증 사진을 보낸다며 실컷 찍고 즐겼다. 오랜만에 무언가를 찍고 있는 나의 모습을 찍어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사우스뱅크 초입에서 열리던 로열 크로케 클럽과 관람차를 지나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껏 멋을 낸 길을 따라 걷다가 인공비치를 만났다. 코밑을 찌르는 수영장 냄새에도 어떻게 도심 한복판에 비치를 만들어놓을 생각을 했는지 기특할 뿐이다. 도심에서도 바다 수영의 느낌을 만끽하라는 배려가 눈에 보인다. 건너편에 반짝이는 건물이 비치에 비치면서 만들어내는 물결이 밤바다의 아련함을 더욱 뭉클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밤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환상 속 인어처럼 빛나 보였다.


비치 뒤편 잔디에서 돗자리를 펴고 누워있는 사람들을 역시 여유가 넘쳤다. 하지만 캔맥주를 들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맥주를 사서 아무 데서나 마실 수 없는 호주이기에. 그래서 우리는 간단히 펍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의 맥주였지만 으깬 감자와 대화를 안주 삼아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랬었지'라는 과거부터 '그렇지'라는 현재와 '그럴거야'라는 미래까지. 마치 늘 그랬던 것처럼.


몽롱한 얼굴로 비치로 돌아가 당장이라도 다이빙할 기분이었지만 우리는 자연스레 타이머를 맞춰 뛰어올랐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다 흔들려도 좋았다. 그저 신난 몸짓이 그대로 표출될 수 있다면.


밤을 밝히는 브리즈번의 불빛도 밝았고 이 순간을 그대로 즐기고 있는 우리도 참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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