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밖에 나서지 않으면

- 호주 브리즈번 여행 -

by 임선영
@Brisbane, Australia


브리즈번에서의 플리마켓을 끝내고 진정 주어진 시간. 매일 같이 보는 풍경인데도 다른 자리에 앉으니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다른 날보다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뜨거움 속에 공원으로 향했다. 센트럴 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작은 공원.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에 쉼이 되어주는 그늘이 가득해서 도심 속 작은 공원의 여유라는 말이 딱 맞다. 꾸밈없는 아늑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공원. 하지만 넓고 넓은 공원을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뜨거운 날씨. 조금만 걸어도 땀이 흐르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뜨겁고 뜨거워서 걷다가 쉬고 걷다가 쉬는 걸음을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크나큰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많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 와중에도 운동을 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나는 돌아다닌 지 몇 시간도 안돼서 순식간에 온몸이 더욱 검게 타버린 것 같은데.


결국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st. joseph college를 기점으로 스프링힐을 향해 내려갔다. 이제는 카메라조차 들고 다니기 부담스러워서 머리 위에 올려두고 걸으며 마음대로 셔터를 눌렀다.


구름 사이로 번뜩이는 햇빛.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길에서 오아시스처럼 발견한 카페는 마치 미국 로드트립 중에 달리고 달려서 발견한 주유소 같은 모습이다. 이 더위에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카페뿐이라고 홀로 중얼거리며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그렇게 더웠으면서도 아까의 뜨거움은 잊은 채 에어컨 바람이 풍족한 자리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도 시켰다.


편하게 있으니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이 마냥 햇살 좋은 날인 것처럼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다. 밖에 나서지 않으면 모른다. 마냥 햇살이 좋을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다. 피부에 닿자마자 따가운 햇빛을 그대로 받아야 한다. 문을 밀고 나가는 순간, 직접적으로 공기를 마주하게 되면 안에서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온몸으로 짜릿하게 느낀다. 그리고 이건 비단 날씨에 국한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우습게도 맞다.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말이 없지만 딱 그 말이 맞았고 그걸 깨달은 순간에도 나는 또 문을 밀고 나서야 했다.

걸어온 만큼 되돌아 걸어가야 하는 길. 골목 중간에 우뚝 솟았다가 날개를 피우듯 양 갈래로 나누어진 나무. 그리고 그 나무를 보느라 미처 마주치지 못 했던 나무 전봇대. 태어나서도 나무 전봇대를 본 적이 없는데, 와이파이를 넘어 더 빠르고 빠르고 빠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삶 속에서 나무 전봇대를 만났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웃겼을까.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더위를 먹은 듯 자지러지게 웃었다.

골목을 벗어나 큰 길을 만나는 순간 달라지는 도시. 걷고 걸어서 스토리 브리지까지. 잔뜩 뜨거웠다가 해가 지려니 함께 가라앉아버린 날씨 덕분에 리버사이드를 산책하기에 좋았다. 괜찮은 분위기의 리버 바를 지나서 보타닉 가든까지 무한정 걸었던 날. 시티로 돌아와 일이 끝난 친구와 만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둘 다 버스에서 졸며 피곤해하다가 내일 떠날 여행 계획을 세우며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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