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산책 여행 -
@Tokyo, Japan
웅성웅성하는 소리에 깨고 보니 이틀 만에 밝은 햇빛이 보였다. 벌떡 일어나서 씻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다리 위에 올라섰다. 햇살은 뜨겁고 강바람은 시원하고 맑은 하늘이라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게스트하우스 3주년 파티가 열리는 날이라 입구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직원들은 모두 티셔츠를 맞춰 입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미 창문에 한가득 그림을 채우고 있었고 티켓을 받은 사람들은 귀여운 디자인의 맥주병을 들고 서로 대화하기 바빴다. 각자가 즐기는 3주년 파티는 이미 시작됐고 나는 그 속에 자리 잡고 앉아서 작업을 시작했다. 낮은 시선에서 그들의 즐거움 가득한 발을 보는 재미.
작업을 마치고 점점 더 많아지는 사람들을 피해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왔다. 첫날 게스트하우스 주변을 산책하며 가보고 싶었던 곳에 다시 갔더니 마침 그 앞에 서 있던 할머니께서 아마 오늘 다른 곳에서 플리마켓을 여느라 매장은 닫았을 거라고, 걷기를 좋아하거나 무언가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가게를 좋아한다면 입구에 붙어있는 지도에 표시된 곳들을 따라가도 좋을 거라고 알려주셨다. 그러고 보니 첫날에는 구라마에 주변이라고 해도 강을 건너 아래쪽을 걸었었지 위쪽은 가보지 않았는데 우연히 만난 할머니 덕분에 정말 괜찮은 가게들을 많이 만났다.
골목 사잇길에 의자를 두고 있는 스탠딩 카페는 아무 데나 앉아도 괜찮았고 햇살이 뜨거우면 의자를 그늘로 옮겨 앉아도 좋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저 소파를 가득 채운 햇빛만이 좋았다. 때마침 3명의 동네 주민이 산책을 나왔다가 커피를 주문하고 일렬로 길게 늘어진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서 햇빛을 만끽하다가 그들을 발견했는데, 지하철에서 마주하고 앉아있는 것보다 훨씬 기분 좋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매장을 크게 내지 않아도 충분히 여유롭고 신선한 분위기를 품어서인지 골목길에 놓여있는 그 어떤 사물과도 잘 어울린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주문한 채 잠시 쉬어가도 아무렇지 않은 곳.
'뛰고있는 심장이 느려질 때, 빠르게 돌아가는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아도 될 때 일어나야겠다. 잠깐만, 눈을 감고.'
남은 커피를 들고 위로 걷다가 걷다가 발견한 만년필 잉크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곳과 그 바로 옆에 문구류를 파는 가게에 들어섰다. 문구류를 파는 곳이지만 정말 매력적인 건 종이를 고르면 노트를 직접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겉면과 속지와 기타 원하는 부자재를 골라 담아서 가져가면 노트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이것저것 물어보며 노트를 만들 가이드라인을 잡고 난 뒤에 가격이 정해지면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 된다. 내부를 구경해도 되고 나중에 찾으러 와도 된다고 했지만 직접 만들어주는 노트가 신기해서 가만히 의자에 앉았다.
정해진 손놀림을 보고 있자니 5분도 안돼서 나온 노트를 받아들고 고맙다고 하자 고맙다는 일본어가 굉장히 자연스러워서 일본인 같다는 칭찬에 '스고이데스네!' 한마디 했더니 안에 있던 일본인들이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그 한마디에도 크게 반응하는 거 보니 한국인이 잘 찾지 않는 곳인 듯 했다.
잉크펜 한 자루와 만들어준 노트를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와서 주말 동안 머물러야 하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9kg 가방을 꾸렸다. 주말 동안 예약이 꽉 차서 어쩔 수 없이 이틀만 머무르고 다시 돌아올 생각으로 가까운 숙소를 구했다.
구라마에 역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모리시타 역이었는데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길을 잃었다. 와이파이도 없었을뿐더러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한 숙소 주인은 별다른 설명 없이 방 비밀번호만 알려주었고, 한참을 헤매다가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 덕분에 겨우 찾은 주소는 뜻밖에도 허름한 아파트였다. 게다가 좁은 골목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이곳이 맞는지 아닌지 아니길 원했지만 슬프게도 복도를 따라 찾은 호수에 비밀번호는 맞았고 내가 배정받은 A방은 고시원처럼 좁았고 창문을 열리지 않았다. 다행히 B, C방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으나 누군가가 마음먹고 문을 연다면 충분히 쉽게 열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서운 마음에 중요한 귀중품만 챙겨들고 다시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파티가 한창인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시끌벅적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안심하고 에어비앤비를 열어 주인에게 쪽지를 보냈다.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방에서 와이파이가 안된다는 말과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느냐고 물어본 나에게 그는 너무도 친절하게 공용 룸에 가면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있을 거라고 알려주며 아마 다음날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다시 새로운 게스트하우스로 되돌아가는 밤, 두려움 가득한 마음으로 지하철역을 지나가는데 스카이트리가 너무나 밝게 빛났다. 그리고 아무래도 혼자 있는 건 무섭다고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마음이 여유롭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한 번 봤었다고 다시 가보니 방은 이전보다 익숙했고, 와이파이 패스워드가 있다고 알려준 공용 거실은 완전 새것처럼 깨끗해서 안심했다. 아파트 2, 3층에 있는 모든 방을 게스트하우스로 쓰고 있는 주인을 믿어보기로 하고 저렴한 가격에 그래도 괜찮은 곳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안심하려고 노력했다. 방에 있는 불은 켜고 잠들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