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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트리 Aug 20. 2021

진짜야.

허언증

Banana actually ©2010.Ltiger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인도의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을 때 일어난 일이야.

 

36시간의 여정 중 1시간이 막 지났을 때 칠십 정도 되어 보이는 한 노인이 나타나 내 발아래에 눕더라고.

미국을 갈거니까 누워서 가야겠대.  나는 이 기차가 델리로 가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아무렴 어때 하고 바나나를 하나 까먹고는 껍질을 창 밖으로 던져버렸어.

그런데 델리와 미국 사이에 낀 우리처럼 창틀에 툭 내려앉았어. 이곳 쓰레기는 창밖으로 버리는 게 정상이라니까.


밖에는 악어 한 마리가 기차와 같은 속도로 기고 있었어.

힘 빼지 말고 기차에 몰래 올라타지 그래,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정말 악어가 툭 앞발로 기차 계단을 오르는거야.  너는 기차의 속도를 닮은 악어니까 다칠 일은 없겠지.


악어의 칸을 지나 식당칸으로 갔어.

그랬더니 거기에 들쥐 두 마리가 말쑥한 정장을 입고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더라. 아까 먹다 남긴 바나나라도 가져와서 좀 줄걸. 시골쥐랑 서울쥐라는데 델리, 아니 미국엔 어인 일로 가는지.

서울쥐는 내가 묻자 포크를 확 집어던지더니 자기는 미국도 싫고 중국도 싫다며 프랑스로 가는 중이라 했어.

들쥐가 새 포크를 꺼내 주고는 마저 먹으면 프랑스에 도착할 거라고 다독거렸어, 그러면서 자기는 거기서 영국으로 가는 유로스타표를 끊겠다잖아.


그때, 잠시 정차를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어. 잠시 후 안경을 낀 소년이 타더라고.

걔는 방학이 끝나서 학교에 간다는 거야. 학교가 어디냐 물었더니, 호그와트래.

나더러 기숙사에 방문하러 가냐고 묻더군. 들쥐들이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떠들다가 디저트로 나온 마카롱을 나한테 집어던지지 뭐야. 저런 쥐새끼들.

소년에게 차마 지금 내려서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게 빠를 거라고 말해주지 못했어.

 

이 기차는 목적지가 대체 몇 개인건지 기장 불러와.

나는 델리로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진짜라니까.  




Jaipur, India ©2007. L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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