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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트리 Mar 02. 2020

아빠의 책상을 훔치는 법

마흔 특집 에세이

    아빠가 책상 위에서 졸고 있다. 아빠는 주말에만 집에 오시는데 그의 비정기적이지만 정기적으로 보이는 일과는 텔레비전을 보고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인기가요' 등을), 오목교역 교보문고로 책을 사러 갔다가, 간식을 사 와서(복용하는 약이 많아지면서 식탐은 형편없이 줄었다) 책상 위에 앉아 있는 것이다. 내 기억 속의 아빠는 언제나 책상과 함께였다.

    책상 위의 아빠는 한겨울에도 티셔츠를 입지 않았는데, 남보다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인 탓이다. 한여름 중국의 길거리에 웃통을 훌러덩 벗고 장기를 두는 아저씨들이 떼 지어 있는 것이 친근할 만큼 아빠의 탈의한 상체는 나한테 익숙하다. 그래서 그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빵빵하고 하얀 사람으로 그릴 수 있겠다. 그 모습 때문에 별명도 '찐빵'이 되었던가. 아빠에게는 하얗고 동실한 몸의 어린이와 세월에 타버린 마르고 붉은 얼굴의 노인이 공존한다. (그런 그가 부쩍 추위에 민감해지기 시작하면서 지난 겨울 내내 곰돌이가 그려진 수면바지와 남청색 내의를 입고 지냈다. 짠하고 귀엽고 슬프고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한번은 반백 반홍의 아빠가 소파에서 너무 졸고 있길래 동영상으로 몰래 찍어 두었다. 이 모습이 나중에 얼마나 그리워질까. 그렇지만 흠칫하고 깬 아빠의 면전에 다정한 말 한 번 건네는 일이 없으니 나는 정말 무뚝뚝한 엄마를 똑 닮았다. 아빠는 거실과 한때 내 방이었던 작은 방 서재를 오가며 무언가를 한다. 보든지, 읽든지, 고치든지, 졸든 지... 그것이 무엇이든 한다. 요즘 아빠는 부쩍 졸음을 참지 못한다. 소스라쳐 깰 때마다 “아유 이거… 깜빡 졸았네!” 하며 긴장을 놓쳤던 시간을 참으로 안타까워하는데 시계를 보면 10분이 겨우 지났을 뿐이다.


    한집에 사는 엄마는 이상하게도 아빠의 이런 세계를 보지 못한다. TV를 보면 나가서 쓰레기를 버리고 걷다 오라고 하고, 냉장고를 열면 또 먹느냐, 말을 걸면 궁금한 게 뭐가 그리 많냐고 한다. 쉬는 날에도 쉬지 못하는 사람, 누우면 죄책감을 느껴서 앉아서 조는 사람,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자꾸만 더 알뜰해지고 싶은 사람, 그러다 다시 일하러 가서야 안심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내 눈에는 책상이 아니면 엉덩이가 반쯤 들려 있는 분주한 사람이 보이는데.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부지런한 아빠의 유년기는 꽤 복잡한 정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가 이따금씩 들려주던 50년대 가정사는 풍자와 해학이 가득했는데, 내가 어리기도 했지만 아빠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옛날 사람들이 보통 그렇게  산 줄 알았다. 아빠의 이야기는 입양으로 시작한다. 삼남으로 태어난 아빠는 자식이 없던 아빠의 외삼촌에게 양자로 들어가 길러졌다. 겨우 학교를 나와 군대를 다녀오자 양부모가 모두 돌아가시는 바람에 갈 곳이 없었다고 한다. 친구 집을 전전하며 동가식서가숙하다 어느 작은 건설회사의 임시직에 마련된 책상 위에 꺼져가던 삶의 불씨를 겨우 올려놓았다. 한 평의 사무실이 중소기업이 될 때까지 일을 먹고, 일을 입고, 일과 잤다. 그렇게 회사의 든든한 밑천이 되어갔다. 그렇게 아빠가 지은 건물로는 대학교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어디 빌딩도 있고... 아무튼 많다.

    하지만 우리 집만 짓지 못하고 아빠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평생을 바친 회사를 그만두었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집에서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아빠는 이해해주지 않는 엄마에게 독설의 최극단을 보여주었고, 엄마는 가정에 위기를 가져온 아빠의 선택에 독설로 맞서다가 결국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무표정으로 대화를 중단하기에 이른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톨스토이가 쓰지 않았던가. 우리 집은 비극과 희극이 난무하는 역동적인 집이었다.

    그 후 아빠는 집을 만드는 대신 비행기를 만들게 됐다. 하늘로 계단을 쌓아 올리는 대신, 하늘에 비행기를 날리게 된 것이다. 아빠가 만든 비행기의 수는 아빠를 볼 수 없는 날에 비례해 늘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20년이 지나있다.

     얼마 전 아빠가 병원을 찾는 일이 부쩍 잦아지면서 퇴직을 권고받았다. 올 것이 오고 말았고, 갈 곳은 병원이 된 아빠는 요즘의 나만큼이나 길을 잃은 듯 화나 보였다. 아프니까 서럽고, 서러워서 더 아프고, 쉬고도 싶은데 일도 하고 싶은 요상한 심경을 속으로 삼키고는 진료를 기다리는 내내 애꿎은 검진 안내문을 트집 잡는다.

"이렇게 복잡한데 노인들이 혼자 병원에 올 수 있겠어? 수납을 몇 번씩 하는 거야?"

병원에 온다고 월차를 내면 눈치가 보이니 다음 검사는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리하여 나는 부모의 성난 고집에 지친 자녀와 어리바리한 보호자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느라 스트레스의 이중주를 경험한다. 내가 아빠의 보호자인 것이 못내 불편하다. 길치인 나를 아빠가 의지해 따라오는 것도 어색하다. 아빠는 나 없이는 병원에서 미아가 될지 모른다.


    아빠는 호흡기 내과에서 약품 흡입기 사용법을 배운다는 빌미로 담당 의사의 논문에 쓰일 기억력 테스트를 받았다. 아빠는 긴장했을 뿐이지만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빠가 치매일 리 없으니까? 아니, 혹시라도 아빠가 오답을 말하거나 아무런 답도 말하지 못할까 봐. 문항은 50개 정도였는데 언어, 연산, 도형, 글자, 그림, 연상으로 혼을 빼놓다가 지나간 제시어의 순서를 다시 묻기도 했다. 비교적 쉬운 문제들이었지만 긴장한 탓에 손에 땀이 났다. 상기된 얼굴의 아빠는 그래도 막힘없이 풀어나갔다. 그 순간의 아빠는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말짱하고 또렷했다.

     테스트 결과는 100점. 실험자는 '참 잘했어요' 도장 같은 리액션을 하며 "아버님, 100점이십니다!"하고 의도적으로 웃어 주었다. 아빠는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개미굴 같은 병원 속 미로를 다시 헤매는 아빠를 잡아끌며 말했다.

 "아빠, 나 속으로 같이 하면서 엄청 떨렸다? 그게 뭐라고. 비행기, 연필, 나무 순서가 갑자기 생각 안 나더라고."

아빠가 크크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나도 진짜 떨리더라니깐! 그게 뭐라고. 그런데 죽고 못 사는 비행기가 제일 먼저 나왔으니 그걸 내가 어떻게 까먹을 수 있겠어?"

이번에도 비행기는 아빠에게 희망을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책상 위에서 조는 아빠를 보며, 잠잘 곳이 없는 한 청년을 떠올린다. 의지할 가족도, 든든한 배경도, 먹을 것도, 철도 없는. 있는 건 '없는 것' 밖에 없는 한 남자는 살아가야 할 미래를 앞에 두고 얼마나 깜깜했을까. 아빠는 심연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을 매일 이른 새벽에 내디뎠다. 그렇게 단 하루도 맘 편히 늘어지는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아빠는 한결같았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담배를 물고, 똥을 누며, 신문을 읽고, 출근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문을 닫고. 다시 문을 열고, 불안의 잠을 자고, 담배를 물고... 반복. 아빠는 시멘트를 친 날에 비가 오면 고심으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사고가 터진 날에는 울며 소주를 마셔서 얼굴이 붉어졌다. 아빠는 코미디언 뺨치도록 웃겼지만 내킬 때만 웃기고 내킬 때는 맘대로 화를 냈다. 집안 분위기를 열대와 남극을 오가게 하면서도 아빠는 주어진 삶을 꾸준히 지속했다. 주어진 운명을 성실하게 산 사람의 주름은 반도네온 같은 데가 있다. 흥으로 연주하다 한으로 폭발하는 주름들. 그런 주름들이 아빠 얼굴에 자리를 잡아갔다.


    일을 그만두고 싶던 날들에는 아빠를 떠올렸다. 사람도 괴롭고 일도 힘든데 아빠라고 이런 일이 없었을까. 남에게서 모멸감을, 스스로는 자괴감을 느껴봤겠지. 그에 비해 성과와 보상이 터무니없이 적은 날도 너무 많았겠지. 내가 아무리 프리랜서라지만 일이 없을 때면, 셔츠 목선 위로 세월에 닳은 아빠의 얼굴을 보기가 유난히 부끄럽다. 마흔의 딸은 칠순 아빠의 꾸준함을 몰래 존경한다. 아무도 끌어주지 않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집에 오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꾸준함 말이다.  

    인간은 일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경제적 자유도 문제지만 존재적 당위에 대해  고민하느라 불행해지고 만다. 일할 때 생기는 자기 중요감이나 자기 효능감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하기 싫다는 말을 수백 번도 더 하고 산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와 같은 책을 겉핥기로 읽고 따라 하다 하마터면 영원히 쉴 뻔하게 될 줄은 모르고. 할 일을 찾지 않는 대신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될 줄은 모르고. 내 존재의 의미는 무엇이 '되었느냐'가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있는데.    

    평생 좋아하는 것을 찾아 움직이는 아빠에게서 내 미래를 본다. 값비싼 테이블에 앉아 행복을 전시하는 SNS의 얼굴보다 자그마한 책상에 앉아 큭큭 웃는 아빠의 얼굴이 부럽다. 칠순을 넘기고도 뭘 찾아볼까 궁리하는 소년의 얼굴이. 일생 긴장으로 인이 박인 아빠의 유전자가 내게 전해져, 나 또한 매일 책상 앞에 꺼질 줄 모르는 노트북을 펴고 앉아 있다. 나는 아직 무엇이 되진 못하고, 무엇을 해보느라 꼼지락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이다.


    졸다 깬 아빠가 왜 자고 가지 않느냐고 아쉬워한다. 엄마는 보따리를 들려주며 더 늦기 전에 가라 하고, 아빠는 딸을 오래 보지 못하는 것을 슬퍼한다. 양화대교를 건너 내 집에 오면,  또 어느 주말에 졸고 있을 아빠를 보러 갈지 요원하다. 그러면서 떡볶이를 먹다가, 서점에서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일기를 쓰다가 친구와 옛날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빠 생각이 나서 그만 눈물을 왈칵 흘린다. 내 삶의 여기저기서 아빠가 튀어나온다. 그토록 단점이 많아서 눈물 나게 밉고, 그토록 꾸준해서 안쓰러운, 손을 잡고 과거로 돌아가 시장의 오징어 튀김과 꽈배기를 실컷 사주고 싶은 아빠가. (만약 엄마가 그 과거로 간다면 찐빵 같은 남자의 구애를 끝까지 거절하겠지.)


    아빠는 성공한 존재이다, 적어도 내게는. 당신에게 주어진 것보다 많은 것을 이룬 삶이니까. 찐빵 아빠에게선 아직도 모락모락 김이 난다. 나는 그렇게 꾸준히 따끈할 수 있을까. 오늘도 책상에 앉아 아빠를 닮아간다.



노답_ 오늘도 책상 정리만 하다 끝났다.
책상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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