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2014)
나의 절친한 지인 중에는 마르케스의 소설을 읽고 콜롬비아로 어학연수를 떠났던 사람이 있다. 그녀는 어쩌다 보니 그곳에서 취업을 했고, 결국 남은 20대를 모두 그곳에서 보냈다. 예술작품이 사람을 이끄는 힘은 그만큼 놀랍다. 책장을 덮으면 그만 돌아와야 하는데, 기꺼이 짐을 챙겨 자리를 털고 일어서게 만든다.
지난가을, 집구석에서 혼자 영화 <경주>를 봤다. <경주>는 그냥 조용한 영화다. 경주에서 박해일이 자전거를 타고, 신민아가 차를 내리는 그런 영화다. 감독이 그린 경주에서는, 창문을 열면 거대한 무덤이 보인다.
창밖에 무덤이 있는 그런 풍경. 그것이 나를 경주로 데려갔다. 홀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간 그 도시에서 나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무덤가를 자근거리며 돌아다녔다. 내가 묵은 숙소는 창문까지는 아니었으나 현관을 나서면 바로 오른편에 무덤이 있었다. 죽음이 그렇게 가까이에 있다니. 그것으로도 족했다.
경주에서 본 죽음은 내가 여즉 살면서 본 죽음과는 다른 것이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데, 나는 가끔 내가 이렇게 흑역사만 남기며 살 거라면 차라리 태어나지나 말았을 것을 농담 반 진담 반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신라시대 임금의 죽음은 대지 위에 설치되었다. 너른 벌판 위에 띄엄띄엄. 그들은 생을 마감한 뒤 둥글게 솟은 언덕과 동산이 되었고, 그렇게 천 년이 지난 지금에는 한 도시의 풍경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들은 정말 자연으로 돌아간 걸까? 아버지는 언젠가 당신께서 돌아가시거든 꼭 화장을 해서 유골을 섬진강에 뿌려달라고 하셨는데. 그런 당부를 기억하며 자란 내게, 사람이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흩어지고 떠도는, 그래서 결국에는 사라지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경주에서, 망자의 육신은 죽어서 아주 비대해졌다. 잔디로 덮인 커다란 흙무덤은 단 한 뼘도 밀어낼 수 없을 것처럼 묵직하고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그들과 함께 말을 타거나 활을 쏜 추억을 떠올리며 그 앞에서 묵념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모를 외국인들이 저마다 사진기를 손에 쥐고 묘지인지 공원인지 모를 그곳을 서성거린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봉분들 뒤로는 상점이며 모텔이 아무렇지 않게 들어서 있었다.
무덤 사이를 거니는 방문객들의 발걸음은 느리지만 가벼웠다. 선선한 바람이 작은 산머리를 하나하나 쓸어 넘기고 있었다. 경주의 무덤들은 내가 여태껏 선산이나 국립묘지에서 보아온 보통의 무덤들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물론, 그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경주의 수많은 건물들이 기꺼이 어깨를 낮추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까지 나는 묘지 사이사이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나도 그 봉분 위로 기어 올라가서 무심한 척 드러눕는 짓을 하고 싶었다. 영화에서 다 큰 어른들이 그러다가 혼이 나는 장면이 있다. 나는 관광안내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중앙시장에서 혼자 돼지국밥을 떠먹으면서, 자정이 되기도 전에 문을 닫는 맥주집을 터벅터벅 나서면서, 나에게 무얼 남기려고 했는지 모를 그 영화 <경주>를 생각했다. 잠시 떨어져 있어도 늘 곁에 존재하는 아내와, 말도 없이 떠나버려서 아직 곁에 남아있는 남편이 있는 그 영화.
그렇게 나는 나와 상관없는 존재들의 죽음 앞에서 죽음을 생각했다. 그보다 더 가까운 죽음은 사실 매년 찾아가는 가족의 묘, 전화도 잘 터지지 않았던 시골집, 낯익은 장례식장 풍경, 베갯머리나 일기장 속에 있는데. 죽음은 사건이 되어 머물다 지나갔고, 더 이상 만날 수 없지만 이따금 식탁 앞에서 자연스레 꺼내는 이름들이 되었다.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녀와서, 카메라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고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것 같은 죽음이 내 방 창문 너머에도 있다. 간직하고 싶은 시간이 계속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