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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진 Apr 14. 2017

잘 편집된 소란

Vicky Cristina Barcelona (2008)


한국어 제목부터 알았다면 과연 보았을까.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니, 별 시시콜콜한 것에 다 충격받는 흔하고 저열한 인터넷 기사 제목 같다.


그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머리를 텅 비우기로 한 날이었다. 시계가 없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알람을 맞추지 않은 채 잠을 청하는 날처럼, 재미없고 한심한 영화를 봐도 괜찮을 것 같은 저녁이었다.


참 가벼운 영화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버리는 영화도 아니었다. 쉬는 것조차도 제대로 쉬어야 한다는 강박을 떨치기 어려운 사람이라서, 제대로 쉰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주는 오락영화라서, 그래서 좋았나 싶었다, 처음에는. 하지만 그래서 재미있었다 말하고 그치기에는 조금 아쉬운 작품이었다.


영화는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여름휴가를 위해 함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왔다가 다시 떠날 때까지 벌어지는 한 편의 소동을 다룬다. 두 여자는 연애관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잘 맞는 친구로서, 여름 내내 바르셀로나에 있는 비키의 친척집에 머물 예정이다. 평소 예술을 동경하던 둘은 그곳에서 화가 후안 안토니오를 알게 된다. 후안 안토니오는 떠들썩했던 이혼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남자다.


등장인물들 사이에는 두 가지의 삼각관계가 발생한다. 크리스티나와 비키 둘 다 후안 안토니오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이다. 약혼자가 있었던 비키는 갈등 끝에 결혼식을 올리고, 후안 안토니오가 크리스티나와 만나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 삼각관계는 유야무야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후안 안토니오의 전처 마리아 엘레나가 자살시도를 계기로 영화에 등장하면서, 후안 안토니오, 크리스티나, 그리고 마리아 엘레나 세 사람이 한 집에서 살게 된다. 이 살얼음판 같은 두 번째 삼각관계는 예상 밖의 전개로 흘러간다.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두 여자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세 사람이 폴리아모리적 관계(다자연애)를 맺게 된 것이다. 한국어 제목은 단순히 이 부분에 초점을 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비키와 그녀의 남편은 깜짝 놀라 크리스티나에게 양성애자가 된 거냐고 묻기도 한다. 이후의 이야기 역시 흥미진진하다.


유쾌하고, 무엇보다도 깔끔한 영화였다. 마치 입가심이 필요 없는 요리 같았다. 보통의 음식점이었다면 단무지가 꼭 있어야 했을 것 같은 그런 요리. 나는 그 깔끔함의 비결이 궁금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에는 비키와 크리스티나라는 두 인물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는 제3의 목소리가 있다. 비키는 현실적이고, 크리스티나는 자유분방하다. 나레이션은 그들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을 관찰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위주로 설명한다. 그런데 누군가에 의해 설명되는 이야기에는 어쩐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나 그럴듯한 결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나레이션이 장면에 부여하는 의미를 생각해보려고 했다.


제3의 목소리가 되어 남들의 사생활을 편집하는 일은 나에게도 종종 벌어진다. 이를테면, 언젠가 새벽 1시가 지났을 무렵, 창 밖에서 짧게 두 번 울리는 클락션 소리를 듣게 된 나는 퍼뜩, 그것이 그날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소리는 한참 뒤에 다시 울렸는데, 책이라면 몇 페이지나 더 넘겼을만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밤의 정적 속에서 같은 소리는 그 이튿날에도, 며칠 뒤에도 반복됐다. 내 망상 속에서 그들은 2인조 빈집털이범과 밀회하는 연인 사이를 오고 갔다.


나의 사생활도, 각색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별 다를 바 없다. 내게 벌어진 사건과 그에 대한 내 기분은 별개의 것이지만 언제나 한 상자 안에 보관된다. 무슨 일이 있어 그날의 감정들을 적어두고 나면 나중에는 그 외의 것들은 기억할 수 없게 되어버리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방식으로 매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보려는 노력은 지속되었다. 정확하지도 않은, 그저 가장 가까운 의미의 낱말을 고르는 데 그치면서도.


나레이션이 있는 영화는 그런 식으로 순간들을 다듬는 것 아닐까. 소리, 빛깔, 미세하게 구겨지거나 흔들리는 표정들을 읽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설명으로 이해하기 시작할 때, 사건들의 의미는 조금 더 닫힌다. 현실에서의 나는, 그렇게 체에 밭쳐 일상의 큰 덩어리들을 건져내고 나서, 가끔씩 그것이 과연 전부였으며 본질이었는지를 고심하곤 했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나에게는 체에 밭칠 것이 잔뜩 불어난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그냥, 부끄러운 날들이었다. 방황의 경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려 했지만 돌아가는 길에 남은 건 자괴감뿐이었고,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하는 일이 두려워졌다. 그렇게 나약해진 상태로 불쑥 다시 영화를 틀었다.


더욱 눈여겨보게 된 그들의 혼란한 표정과, 빠르고 경쾌하게 넘어가는 장면들 사이에서, 나는 보다 인간적인 순간들에 머물렀다. 비키는 남편이 크리스티나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고, 크리스티나는 비키 부부 앞에서 태연한 척 그러나 들뜬 어조로 자신의 대범한 연애를 과시한다.


나는 굳이 나레이션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체에서 빠져나갔을지 모르는, 나의 시간과 비슷하게 흐르는 그들의 시간을 상상하게 되었다. 정리되지 않은, 의미조차 알 수 없는 날 것의 감정들에 붙잡히는 시간이다. 내가 그들이었다면, 나는 잘려나간 장면들 사이에서 더욱 긴 시간을 갈등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시간을 압축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겠지. 그때 어떤 일이 있었고 기분은 어땠는데 하면서.


실제로도 제법 많은 시간을 그런 일에 몰두하며 보낸다. 앞으로 무얼 할 지에 대한 생각만큼이나 무엇을 해왔는지에 대해 많은 감정을 흘려보낸다. 어쨌든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은가. 그리운 건 전부 어제의 사람들이다.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드라마를 찍었고, 그런데 녹화를 대체 어떻게 했는지 볼 때마다 나레이션은 매번 다르게 제작된다.


혼자 감상에 젖기 위해서든 누군가에게 자랑하듯 떠벌리기 위해서든, 나의 우여곡절은 그렇게 재미있게 편집될 수 있을까? 우디 앨런은, 그 역시 남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좋은 사생활을 가진 감독이지만, 성공한 이야기꾼인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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