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피어슨은 늘 핀잔과 잔소리뿐인 엄마가 야속하다. 공부 못한다고 무시당하고, 정리정돈을 하루라도 거르면 혼나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대들면 더 크게 야단맞는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 입고 싶은 옷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반색하거나 응원하지 않는 엄마. 그래서 그녀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가 날 사랑하는 건 알아. 그런데 날 좋아하지는 않는 거야?
자신의 유별난 성격을 감출 수 없고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울퉁불퉁한 열일곱 살.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은 그녀가 그녀 자신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심지어 본명으로 부르면 화를 낸다. 엄마랑 다투다가 분을 이기지 못해서 달리는 차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그저 취미로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고, 수학은 못하지만 수학 올림피아드는 나가보고 싶다고 말하는 붉은 머리 고등학생. 자화상은 인면조다.
레이디 버드와 그 또래들은 그 자체로 십 대를 상징한다. 허세, 허영, 자의식 과잉 같은 단어들과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말이다. 정제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들을 물풍선처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서 애꿎은 주변 사람들의 소매자락을 적시고,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 후회하게 될 싸구려 옷과 액세서리에 귀한 용돈을 폴폴 낭비하는, 그런 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 모든 허물을 벗고 지금은 완벽한 성인으로 거듭났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 날은 아마 죽을 때까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귀엽고 창피한 그들 앞에서, 마치 나는 아니었던 것처럼 하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지루한 시골 생활과 답답한 가톨릭 학교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던 레이디 버드에게, 그 못마땅함 아래에는 그러나 깊은 애정이 감춰져 있었음을 살며시 깨닫는 계기가 온다. 실은 그녀의 고향 새크라멘토에는 상상과 거짓을 보태서라도 내 것이었으면 좋겠는 멋진 주택이 있었고, 운전대를 붙잡고 있다가도 잠시 넋을 잃고 빠져들게 만드는 낭만적인 풍경이 있었고,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는 소중한 단짝 친구가 있었다.
좋아하지는 않아도 사랑하고 있었던 모든 것들과 잠시 작별한 채, 그토록 꿈꿨던 도시에서 레이디 버드는 부모가 준 이름 크리스틴으로 돌아간다. 속상함과 그리움에 술을 진탕 마시고 응급실에서 눈을 떠버린 일요일 아침. 그녀는 가까운 성당으로 가서 성가대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향, 학교, 이름, 그리고 엄마를 향해 진심을 담아 고백한다. 좋아한다는 다정한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