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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진 Jan 26. 2016

그녀가 남기고 간 것

그녀 (2013)

*결말 포함*


기계와 인간의 인터랙션에는 특별한 화두가 존재한다. 촉각, 후각도 아닌 감정적 교감. 사실 인간처럼 느끼고 욕망하는 인공지능 머신은 <A.I.>, <바이센테니얼 맨>과 같은 작품에서도 줄곧 등장해온 고루한 소재였다. 다만 <그녀>에서는 그 존재가 에로스적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에 보다 이목을 잡아 끈다.


물론, <바이센테니얼 맨>의 로봇 앤드류도 인간과 사랑에 빠진다. 감정을 가진 가사도우미 로봇 앤드류는 단지 인간 같은 기계가 아닌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 피부를 입고 장기를 장착한다.


그러나 <그녀>의 그녀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는 컴퓨터나 모바일폰 속에서만 존재한다. 스마트 디바이스 운영체제인 그녀가 가진 '인간적인' 것이라고는 오로지 매력적인 목소리 하나뿐이다. 명색이 인공지능 OS 시대이니, 최소한 고화질 모니터 속에서라도 자신의 인간적 형상을 구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육신의 이미지를 나타내지 않는 사만다는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떠오르게 한다. 그녀도 갑옷 속의 기사 아질울포처럼 물질과 존재의 관계─몸이 없는데, 몸의 움직임을 상상하며, 자신의 몸이 아니라고 믿는 물체 속에서만 존재하는 기묘한 상태─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와의 육체적 관계에서 자신을 대신할 꼭두각시 여성을 섭외하지만,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그 여성을 엄연하게 구별하기 때문에 결국 중간에(?) 그만두고 말았다.


일종의 복선인지,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OS를 다운로드하기 전인 영화 초반부에는 그가 외간 여자와 폰섹스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그는 상상을 통해 퇴근길에 본 누드 화보 속 여성의 몸을 떠올린다. 사만다와 할 때도 비슷한 상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만큼은 영화 밖의 관객은 그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 스칼렛 요한슨을 눈으로 따라 그려보지는 못한다. 모두 자막만 둥둥 떠오르는 까만 화면을 보게 될 뿐이다.


그녀는 '표정이 있는' 목소리를 가졌지만 끝까지 인간의 겉모습과는 거리를 둔다. 자유분방하지만, 인간과 다른 OS라는 자신의 태생에 충실하기에 그 틀을 깨지 않는 것이다. 이 영화가 그린 인공지능과의 교감이 특별하고 신비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테오도르는 한 번도 보거나 만져본 적 없는 그녀와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싹 틔운다.







그녀가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선을 긋고 떠나가 버린 후, 그는 왜 전처인 캐서린(루니 마라)에게 언제까지고 사랑한다는 편지를 썼을까? 그는 캐서린과 실질적으로 이혼한 상태였지만, 이성과의 진지한 관계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직장생활 외에는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사만다는 지극히 소극적이고 표면적인 수준으로 침잠해버렸던 그의 커뮤니케이션을 다시 반짝이며 살아나게 했다. 비록 사만다가 결국 그를 떠나긴 했지만, 그는 그녀 덕분에 오랫동안 스스로를 고립시켜왔던 감정의 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는 상실의 상태에 머물러있었지만, 새로운 연인인 사만다를 통해 유쾌하고, 진실하며, 때론 질투와 혼란이 휘몰아치는 연애의 모든 것을 겪었다. 그러한 다른 사랑을 통해, 그는 캐서린이라는 존재에 무뎌졌다기보다는 그녀와의 이별이 주었던 쓰라린 실패감으로부터 한 발짝 나아가게 되었다. 헤어진 아내와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돌이켜 보고, 상실감의 근원이 되는 '변치 않는 사랑'만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별은 결코 약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 속에서, 다음 상대가 캐서린 또는 어떤 새로운 사람이든 간에 그는 이제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작은 온기처럼 남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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