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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moon society Aug 22. 2016

"일단 앉으셔"

말이 필요 없는 공간, 이문동의 덕수이발소

이발소를 생각해본다. 보통 사람들이 ‘이발소’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감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대표적으로는 미용실의 그것과 같은 삼색봉을 생각할 수 있다. 그다음으론 소위 바리깡이라고 불리는 이발 도구, 아니면 군입대 전 머리를 밀러 가는 곳, 젊은이들보다는 어르신들이 찾는 곳 등등. 확실히 현대화된 요즘의 미용 문화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심지어 요즘 젊은 세대는 방송이나 영화 등 매체로 이발소를 접한 적은 있어도 직접 본 적은 없다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의 추억, 이발소는 그렇게 그저 지나간 옛 기억으로 치부되는 것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2016년 현재에도 이발소의 삼색봉은 여전히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돌아가고 있으며, 이발소를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의 덕수이발소는 아직도 '이용원'이라는 이발소의 옛 이름을 그대로 간직한 추억의 이발소 중 한 곳이다. 한자로 '큰 덕(德)'에 '장수할 수(帥)'자를 사용하는 덕수이발소는 '커트 7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대로 벌써 1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삼색봉과 같이 흰색, 파란색, 빨간색으로 꾸며진 이발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겉모습과는 달리 3D 상영관의 의자처럼 퍽 안락하게 생긴 의자들이 줄줄이 늘어서 손님을 맞는다. 이발 중인 손님은 놀랍게도 거울 앞에 발을 뻗고 아예 편히 누운 자세로 코를 작게 골며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면도날이 목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아찔한 순간에도 손님은 모든 것을 전적으로 이발사 아저씨께 맡긴 듯했다. 이곳은 과연 어떤 이발소일까. 문득 호기심이 앞섰다.



이발소의 내부를 관찰해보니 일반 미용실과는 다른 특이점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이발소 한 켠에는 아코디언과 키보드를 비롯한 다양한 음향장비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벽면에는 범상치 않은 각종 자격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게 다 뭘까...' 궁금해하는 와중에 이발이 끝난 손님의 머리가 언제 덥수룩했냐는 듯 말끔한 모습을 되찾았다. 거뭇거뭇 돋아 있던 수염도 꼭 광고에서 나오는 전기면도기로 면도를 한 것처럼 깔끔한 모양새를 자랑했다. 알고 보니 이 손님은 벌써 이발소를 드나든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는 단골 중의 단골이셨다. 이렇게 단골들의 발걸음을 계속 오갈 수 있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덕수 이발소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단골손님에게 질문을 던졌다. 옷걸이에 걸어 두었던 넥타이를 다시 매는 손님의 대답은 간결했다.


"여기는 그냥 들어오면 알아서 해. 말할 필요가 없어."


'말이 필요 없다', 이 말 한마디가 가지는 신뢰감은 어마어마했다. 뿌듯한 표정으로 서 계신 이발사 아저씨의 얼굴에는 그 발언을 뒷받침하는 자신감이 돋보였다. "10년 단골은 기본이고, 저 멀리 미국에서 한국 올 때마다 바로 여기 들려서 머리 하는 손님도 있지." 워낙 손님들을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에 친구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하니, “뭐 와서 하다 보면 친구도 되고 그러는 거지 뭐. 다른 거 뭐 있어.”라고 하신다. 누구든 오면 친구가 된다는 이 한마디에는 이발사 아저씨가 손님을 대하는 남다른 철학이 담겨 있었다.



덕수이발관이 비단 이발소로서의 정체성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요일에도 아침 8시에 문을 열 정도로 부지런한 이발사 아저씨가 유일하게 쉬는 날은 매주 수요일. 전농동에 위치한 수산노인대학에서 매주 정기봉사를 하고 계신 아저씨는 이 날 만큼은 이발소의 문을 닫는다. ‘동대문구 음악 단장’으로도 활동하는 이발사 아저씨는 음악과 악기를 사용해 노인분들에게 노래 강습을 해주고 계셨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이발 봉사로 시작해 조금 더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음악 봉사를 시작하게 되셨다는 아저씨는 이제 무명가수들을 데리고 한 달에 두 번씩 요양원을 찾아가 어르신들께 노래를 가르쳐 드리기도 하고, 깜짝 생신 파티를 열어 노인분들에게 감동을 전해 드리기도 한다.


“요즘 노인분들 봐, 정년 퇴임하고 손주 손녀들 없는 집에 혼자 계시는 노인분들이 얼마나 외로운데. 그런 노인 분들한테 내가 가서 노래 불러드리고 악기 연주해주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 나는 우리가 먼저 그분들에게 다가가야 된다고 생각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수년 동안 음악 봉사를 계속하는 거고. 그분들이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나도 같이 행복해지는 거지 뭐.”



이렇게 '더불어 사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발사 아저씨 덕분인지, 이곳을 지나가다 아무 거리낌 없이 가게에 들러 아저씨와 담소를 나누는 동네 주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라는 이발관 옆 체육관 관장님부터, 저 멀리 다른 동네에서 놀러 오신 단골 할아버지까지, 4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매일 이곳 덕수이발관을 찾아왔다.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덕수이발관은 흔한 이발소로 시작해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잇는, 이제는 이문동 전체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사랑방과 다름없었다. 앞으로도 이곳이 오래도록 잔잔하게 빛을 발하길 바라본다.



ⓒ 마효원 유예은 이리나 장희주 최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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