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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NIRVANA Mar 19. 2017

한석규, 부활 신호탄?

영화 <프리즌>


한때 한석규는 한국영화계의 흥행 보증수표였다.

영화 '닥터 봉'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고 나서 그 이후로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쉬리'를 끝으로 내리막길을 걸을 때까지 그의 주연작들은 한번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다.

그러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출연하는 영화마다 영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그의 연기를 좋아했던 터라 참 아쉽더라.


사운드가 뭉개져서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 영화의 기술적인 한계에서도 자유로운 몇 안 되는 그의 발성은 정말 대단한 무기다. 성우 출신인 그의 목소리는 대사를 또렷하게 전해준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가.

어쨌거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로 재기에 성공했지만 영화 출연작(베를린은 제외하자)은 여전히 예전의 영광이 먼 이야기로만 느껴지던 요즘이었는데, 그가 다시 '프리즌'으로 새로이 출사표를 던졌다.

얼마 전에 종영한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보여준 부드러운 카리스마와는 180도 대척점에 있는 악의 축으로 등장하는 한석규는 아주 신선하진 않지만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을 줬다.

차승원과 공연했던 '눈눈이이'와 비슷한 느낌은 아닐까 했던 내 우려는 말 그대로 우려에 불과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한석규가 제대로 된 악역을 연기하면 정말 강렬한 캐릭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프리즌'의 정익호가 바로 그런 악역이었다. 

이전 작인 '구타유발자'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와는 궤가 다른, 악의 정점에 선 정익호는 근래 한국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은 '보스' 캐릭터였다. 정익호는 정말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인 악의 군주이다. 마치 '데어데블'의 숙적이자 헬스키친의 밤을 지배하는 킹핀을 떠올리게 한다. 재소자인 그는 교도소장마저 떡 주무르듯 좌지우지하는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조직폭력배들조차 꼬리를 내릴 정도로 카리스마의 소유자. 영화 속에서 한석규는 과장되지 않은, 오히려 절제된 연기로 정익호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투톱으로 나오는 김래원이 상대적으로 밀리진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었다. 


김래원은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에서는 대체로 어둡거나 억울한 사연을 가진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는데 이번에도 크게 다르진 않더라. 다행히 그도 나이를 먹으면서 연기에 중량감이 생기기 시작한 거 같다.

김래원이 연기한 송유건은 무간도의 양조위와는 다른 분위기를 지닌다. 보다 원초적이고, 보다 직접적인 동기를 지닌 인물이어서 자칫 과잉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데 의외로 감정선을 꾹꾹 잘 누른다. 덕분에 신파로 빠질 수 있었던 이야기가 묵직하게 기교를 부리지도 않고 스트레이트로 끝까지 완주한다.  

그 또래의 배우들 중에는 여전히 답보상태인 모습을 보이는 예가 적지 않은데, 김래원은 드라마 '펀치' 이후로 한층 성장한 느낌이다. 한석규라는 관록 있는 배우를 상대로 크게 밀리지 않을 걸 보면 나중에 그가 중년으로 접어들었을 때 어던 연기를 보여줄 지 자못 기대가 크다.



영화 '프리즌'은 교도소를 장악하고 있는 '정익호'를 중심으로, 다양한 과거와 스킬을 지닌 재소자들이 밤마다 밖으로 나와 완전범죄를 벌인다는 기발한 컨셉의 로그라인이 돋보인다. 물론 이야기는 다소 전형적으로 진행되지만, 두 배우의 앙상블은 지루할 틈 없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한석규가 연기한 정익호의 전사(前史)가 너무 없어서 조금은 스테레오 타입 같은 느낌을 주긴 했지만 그것도 그의 훌륭한 연기로 상쇄된다. 특히 정익호라는 인물의 무시무시한 일면은 단 한 씬으로 함축해서 보여주는데 매우 탁월한 배치가 아니었나 싶다(그 장면은 직접 영화관에서 확인하시라).

교도소장을 연기한 정웅인이나, 교도국장 역의 이경영, 정익호 오른팔 역의 조재윤 등은 늘 해오던 딱 그만큼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초반의 오프닝에 잠시 등장하는 단역 외에는 여배우가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 마초들의 이야기라서 여성 관객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청불이라는 등급도 흥행 전선에 장애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자체는 티켓 값을 충분히 하는 오락영화로서 손색이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팝콘 무시 지수' 3.5/5를 주고 싶다.

암튼 재미있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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