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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NIRVANA Apr 23. 2017

정치라는 쇼의 민낯

영화 <특별 시민> 리뷰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동네 방방곳곳을 오가는 유세 차량이 확성기로 방송을 틀어댄다. 마이크를 잡고 직접 지원 연설을 하거나 후보가 연설하는 동영상을 틀어주지만 사실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대신에 익숙한 유행가 멜로디에 입힌 가사들은 귀에 쏙쏙 들어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되뇌기도 한다. 단체 율동이나 후보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컬러도 마찬가지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을 아는 대로 말해보라고 하면 서너 가지 남짓 대답할 수 있다면 차라리 양반이다.

그렇다. 정치라는 결국 이미지를 파는 쇼나 다름없다. 오늘날 정치는 연예사업으로 대변되는 쇼 비즈니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연예인이나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고 맹목적으로 따라는 팬덤 문화는 이제 정치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정치인들도 공약이나 철학보다는 이미지를 시각화하고 이슈를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인 걸 안다. 시청률 높은 방송에 출연하고, SNS 같은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옛날 괴벨스가 말했던 것처럼 대중은 선동에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빠른 비트의 음악에 맞춰 후보의 이름을 후크 송처럼 유권자의 뇌리에 각인시키려는 전략은 꽤 주효하다.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결국 정치도 대중을 상대로 하는 하나의 거대한 쇼이자 이벤트인 셈이다.

이런 정치라는 쇼의 민낯을 영화 <특별 시민>은 여과 없이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힙합 가수들과 공연하는 재선 시장 변종구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거란 결국 멜론 차트처럼 누가 더 좋은 이미지,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는지에 따라 갈리는 인기투표에 불과하다.

마치 TV드라마가 시청률에 목을 매듯, 가수들이 음원차트 순위에 전전긍긍하듯, 정치인들도 지지율이라는 숫자놀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영화 <특별 시민>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매우 독특한 포지션을 가진 정치 영화다. 강우석 감독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이후로 가장 인상적인 정치 영화가 아닐까 싶다.

헌법 사상 최조로 3선 시장에 도전하는 변종구를 연기하는 최민식은 단지 눈빛과 표정에 작은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스크린을 장악한다. 이제는 경지에 오를 대로 오른 이 대배우의 연기를 두고 평을 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그의 맞상대인 곽도원의 연기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참 묘한 배우다. 

그가 연기하는 선대위원장 심혁수는 언뜻 이전 작인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아수라>의 연결선상에 있는 캐릭터 같으면서도 변별되는 색깔을 보여준다. 작중에서 자기 입으로 검사라고 하면 검사 같고, 깡패라고 하면 아, 깡패구나 하고 납득하게 만드는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 역할을 곽도원이 아닌 다른 배우를 맡는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혁수라는 캐릭터에 녹아들었다. 

반면에 홍보담당 박경을 연기하는 심은경은 사뭇 아쉽다. 영화 <불신지옥>에서 아역임에도 (실제 배역에서도)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며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그녀는 분명히 또래 배우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연기력을 지녔다. 영화 <써니>, <수상한 그녀> 등으로 상업적으로 성공을 이루기도 했지만 최근작인 <조작된 도시>에 이어 이번 작에서는 어딘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을 줬다. 어쩌면 전작들의 코믹한 이미지가 강렬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확실히 이번 영화에서 박경이라는 캐릭터는 다른 쟁쟁한 조연들에 묻힌 감이 없잖아 있다. 

심지어 상대 진영의 홍보담당으로 나오는 류혜영보다 존재감이 없다.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 두 여배우의 캐릭터는 묘하게 유사하다. 오히려 그것이 독소로 작용해서 두 캐릭터의 차이가 무엇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심지어 두 캐릭터가 작중 퇴장하는 동기마저 닮아서 사족 같은 동어반복처럼 느껴졌다.

뭔가 설명적인 영화의 마무리도 솔직히 아쉽다. 조금 더 과감한 생략을 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극단적으로 최민식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까지 행간에 들어가는 사족이 좀 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꽤 훌륭하다. 

아마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저걸 언제쯤 터뜨릴까 하는 이슈가 있는데 의외로 이른 지점에서 과감히 카드를 오픈한다. 덕분에 정치풍자적인 드라마 같은 내러티브가 중간에 스릴러적인 색이 입혀지면서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것도 이 영화가 가진 장점 중 하나다.

몇 가지 뚜렷한 단점들이 있음에도 분명히 이 영화는 앞으로 한국영화에서 정치영화를 거론할 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작이지 않을까.     

팝콘 무시 지수 3.5

장미대선 레이스가 다소 싱거워졌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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