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날>
한 남자가 아내를 떠나 보냈다. 하지만 그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홀로 배회하다가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빈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불을 붙인 담배를 식탁에 놓고 애잔한 눈빛으로 빈 의자를 바라본다.
영화 '어느 날'은 그렇게 아내를 잃은 이강수의 하루를 몽타쥬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섬세한 감정 연기 대신에 거친 날것의 연기를 하는 김남길의 모습은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제목처럼 아무런 예고 없이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상실 앞에선 아무리 강한 사람도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
영화 '어느 날'은 아내를 잃은 보험회사 직원이 사고를 겪은 시작장애인의 생령을 만나고 점차 자신의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언뜻 플롯만 보면 제이크 질레한 주연의 '데몰리션'이 떠올려진다.
두 영화의 남자주인공들이 처한 상황도 매우 유사하다. 영화 내내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까지.
둘 다 우연히 한 여자를 알게 되면서 치유의 과정을 밟는 것도 닮았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데몰리션'과 비교될 수 밖에 없다.
데몰리션의 제이크 질레한은 과거를 '파괴'하며 그 안에서 나와 화해한다면, 어느 날의 김남길은 자신을 타자화하며 애써 과거를 밀어내려다가 타인을 돕게되면서 그것이 곧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상실을 겪은 사람들은 누구나 기억이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나올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설사 불가항력이었다 하더라도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고 스스로에게 주는 일종의 형벌이다.
영화는 그 상실이란 감정을 디테일하면서 영리하게 다루고 있다. 자칫 신파로 빠지기 쉬운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지만, 절대로 관객에게 눈물을 강요하지 않고 완급조절을 하며 마지막 라운드까지 끌고 간다. 그리고 손수건을 준비하고 울어야할 지점에서 묵직한 한 방을 날려 기어이 완고한 관객의 가드조차 무방비로 만들어버린다.
상실 이후에 찾아오는 첫 번째 감정은 슬픔이나 그리움이 아니라 분노다.
분노의 방향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타자를 향하기도 하고, 때로 어떤 절대자를 원망하기도 하고 하지만 대게는 자신을 향한 분노다.
그 극렬한 감정은 스스로를 서서히 좀먹고 망가뜨린다.
그러고 나면 자기 연민이 시작된다. 이렇게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을 오가며 주변의 선의마저 적대적으로 대하고 오롯이 외따로 홀로 남겨질 때 비로소 자신과 똑바로 마주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선택의 문제다.
이대로 자기부정을 지속할 것인가.
자신과 화해하고 다시 살아나갈 것인가.
하지만 사람은 의외로 자신에게 엄격하다. 자신과 화해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감독은 그 여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배우 천우희와 김남길이라는, 언뜻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조합도 스크린 안에서는 멋진 조화를 이룬다. 워낙 연기 잘 하는 천우희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지만 어느덧 서른중후반으로 접어든 김남길도 이제는 힘을 뺀 연기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었다.
이 영화의 엔딩은 상당히 논쟁적이서 아마도 영화 외적으로 여러 담론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만약 혼자 감정을 토해내고 싶은 사람이면 꼭 관람하길 권한다.
팝콘 무시지수는 4점.
손수건은 꼭 챙겨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