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의 20세기>
마트에서 아들과 장을 보던 도로시아는 사람들의 소란에 무슨 일인가 싶어 주차장을 내다본다. 연기와 화염을 내뿜으며 자신들이 타고온 차가 활활 타고 있었다.
영화 <우리의 20세기>의 오프닝이다.
전기장치 이상으로 불타버린 그 차량은 도로시아의 남편이, 제이미의 아빠가 남긴 것이다.
두 모자는 전소된 차를 두고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한다.
도로시아는 좋았던 추억을, 제이미는 그 반대의 감상을.
어쩌면 그것은 단지 차에 대한 추억을 말한 게 아니라 도로시아는 아직 남아있는 남편에 대한 미련, 혹은 좋았던 추억을 말한 것이고, 제이미는 희미해져버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 가족, 같은 구성원임에도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생각은 늘 이렇게 다르기 마련이고 그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것이 가족 사이이든, 연인 사이이든, 혹은 친구 사이여도 예외는 아니다.
남편의 차량이 전소되는 순간, 도로시아는 오롯이 혼자 남았음을 실감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는 아들을 잘 길러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를 새삼 느꼈을 것이다. 그리하여 도로시아는 한 집에 세를 들어 사는 애비와 아들의 소꿉친구인 줄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자신은 제이미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세대이니, (자신을 제외하고) 누구보다 가까운 그 두 사람에게 제이미가 좋은 남자로 성장하게끔 잘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
그녀의 부탁에 처음 두 사람은 난색을 표한다. 특히 줄리는 소꿉친구의 엄마가 될 수는 없다며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부터 두 모자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작중 도로시아의 대사처럼 가까운 사이여도 잘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관계를 망치기 쉽다.
우리들 삶도 마찬가지다.
특히 관계가 주는 어려움은 영화의 배경인 70년대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상의 인연, SNS에 천착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맺은 인연이 진짜 인연이라고 믿는 한편, 언제든 쉽게 팔로우를 하거나 차단을 함으로써 관계를 쉽게 맺고 끊는다.
그만큼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일수록 SNS의 편이성에 매몰되기 쉽다.
사실 관계의 어려움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는 데에 원인이 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소중한 인연일수록 더욱 그렇다.
도로시아의 대사처럼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오히려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흔하다.
작중 도로시아는 내래이션을 통해 자신의 사후에 바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자신은 인터넷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며, 핵전쟁의 두려움보다 이상기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시대를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더 많은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바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어디서 행복을 얻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많은 것이 달라지겠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가치, 어려움을 말한다.
그녀가 살았던 70년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분명히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남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어쩌면 그녀가 살았던 시대보다 더 어렵고 더 힘든 시대인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광고에서 봤던 카피가 생각났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란다.’
맞다. 우리는 늘 살아가는 내내, ‘처음’일 수밖에 없다.
전생(만약 그런 생이 존재한다면 말이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지금 우리 사는 삶은 우리에겐 ‘처음’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서툴고 실패를 겪는 게 당연하다.
애비가 제이미에게 충고했듯,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무리 철저한 계획을 세워도 늘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겨서 궤도를 벗어나기 일쑤다.
우리 삶은 그렇게 불완전하기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어긋남의 대부분은 관계를 망치는 데서 온다.
도로시아가 아들의 교육을 애비와 줄리에게 떠넘긴 이유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제이미에게 고백했듯이 자신 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녀는 자신의 역할을 두 친구에게 떠넘겼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히 떠넘긴 것이고, 그로 인해 제이미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제이미는 말한다.
“우리 두 사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고.”
둘은 비로소 서로에게 솔직해졌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상대에게 전하고 나서야 극적인 화해를 한다.
사실 상대에게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가까우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관계의 어려움은 그 관계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온다.
솔직함이 그 관계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우리는 먼 길을 돌아가고,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포장하고 감추기도 한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둘의 관계가 나아지리라 안심하는 순간 제미이가 독백을 통해 말한다.
이때가 서로를 이해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문득 우리 삶에서 해피엔딩은 존재하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해피엔딩은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 알고 싶어졌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내래이션을 통해 이후의 삶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그들이 과연 현재에서 더 나아갔는지, 아니면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는지는 쉽게 평가하기 어렵다.
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그 또한 알 수 없다. 아마도 죽는 순간까지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고, 더 나은 관계를 위해 노력할 건 분명하다. 그 노력으로 관계가 더 망칠 지도 모르지만. 솔직함이 그 어려움을 풀어내는 열쇠임을 배웠던 제이미조차도 다시 누군가에게 솔직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어쩌면, 행복은, 삶에서 맞는 해피엔딩은, 솔직하게 오롯이 자기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순간에 비로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나는, 우리는 타인에게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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