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영화사를 통틀어 원작을 뛰어넘는 작품은 손에 꼽힐 정도로 그리 많지 않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대부>, <파이트 클럽> 정도가 그런 평가를 받는다. Syfi 장르에서는 <블레이드 러너>가 클래식 반열에 오를 정도로 원작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사후에 더 사랑 받는 불운의 작가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꾼다>를 각색한 이 작품은 개봉 당시엔 관객의 외면을 받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재평가 된 저주 받은 걸작이다.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블레이드 러너>는 굉장히 어둡고 무거운 톤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정체성을 끊임없이 희구하는 주인공의 갈등은 <블레이드 러너>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 사이버펑크물을 표방하는 영화나 재패니메이션에서 빈번하게 등장하기 차용되는 정체성 찾기 여정 또한, 잘 살펴보면 <블레이드 러너>에서 보여줬던 플롯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이 영화가 서브컬쳐 전반에 끼친 영향은 상당했다.
그러기에 열린 결말이었음에도 속편이 나오리란 예상은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속편이 나오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고.
이전 연출작인 <시카리오>에서 천재적인 면모를 보여줬던 드니 빌뇌브는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걸작의 속편을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이 영리한 감독은 전작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그 유산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실로 흠잡을 데 없는 속편을 세상에 내놓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복제인간을 사냥하는 블레이드 러너가 주인공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도 똑같은 복제인간이다.
해리슨 포드가 연기했던 데커드가 자신 역시 복제인간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조' 또한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의혹을 갖게 되면서 정체성 찾기에 나선다.
이렇게, 닮은 듯 다른 플롯이 묘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내가 온전히 '나'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기억'이다.
기억은 곧 정체성이다.
하지만 그 기억이 인위적으로 심어진 것이라면?
그 섬뜩한 자각은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이 심오한 물음은 어느덧 SF장르에서 단골메뉴로 쓰이기 시작했다. 기원을 따지자면 그 옛날 중국의 도가 철학자 장자의 '호접지몽'에서 찾을 수 있다. 나비는 내가 꾼 꿈인가, 아니면 내가 나비가 꾼 꿈인가. 종종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모를 혼란에 빠져 답을 구하지 못해 미로를 헤맬 때가 있다. 이미 정해진 당연한 답이라고 여겼던 것이 진실이 아니었을 때, 나를 지탱해온 자아는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그 나약함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시스템을 견고히 하고 그 시스템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안주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견고한 세계를 구축해도 모든 것엔 시작과 끝이 있듯이 언젠가는 모래성처럼 허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제나 그 분열의 시작은 아주 미미한 점에서 촉발된다. 신화에서 말하는 '트릭스터'라는 존재가 있다. 세상을 희롱하고 견고한 세계를 무너뜨리고 그리고 파괴된 잔해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게 만드는 악동들, 반골들.
전작과 이번 작에서, 복제인간을 사냥하는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와 '조' 또한 그런 트릭스터의 모습을 갖고 있다. 그들은 한때 시스템에 종속되어 충실한 충복처럼 일을 했으나 사소한 계기로 의심을 품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다가 결국 시스템을 깨고 세상 밖으로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기에 이른다. 마치 그것은 성서에서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자유의지'를 선물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다.
굉장히 훌륭한 후계자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번 작품도 단점은 있다.
담고 있는 이야기나 미장센, 음악, 그 모든 것이 거의 완벽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영화적인 감흥은 그만큼 반감되는 것도 사실이다. 때때로 어느 부분에선 지루하기까지 했다.
전작에서는 마지막까지 텐션이 유지되었지만, 이번 작에서는 품고 있는 담론이나 음모론은 분명 매력적으로 다가오나, 장르적인 쾌감은 솔직히 약했다. 어쩌면 패스트푸드의 자극적인 맛에 길드여져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슬로우푸드를 맛있게 먹지 못하게 된 것처럼, 관습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일에 너무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이 영화는 분명 훌륭한 걸작이고, 전작과 마찬가지로 세월이 흐르면서 반드시 재평가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조차 제대로 모르듯이, 후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않겠나.
"I don't know who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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