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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NIRVANA Oct 26. 2017

이토록 가슴 절절한 고백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제임스 프레이저는 명저 <황금가지>를 통해 비슷한 것끼리는 서로 공감하여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른바 공감주술을 제창한 바 있다. 문명이 태동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이런 믿음은 비록 이성과 논리에 그 존재감이 많이 퇴색했지만 여전히 잠재의식처럼 우리 안에 내재되어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감정, 그것은 단순히 이성과 논리로 재단할 수 없다.



남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살아온 '시가(원작은 1인칭 나)'는 어느 날 맹장수술로 병원을 찾았다가 동급생인 '사쿠라'의 비밀노트를 줍게 된다. '공병문고'라고 이름 지은 그 노트에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녀의 비밀이 적혀있었고, 시가는 원치 않게 그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고 만다. 노트의 주인인 사쿠라는 시가와는 달리 누구하고도 잘 어울리며 남녀 공히 사랑을 받는 인기인이란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정반대 대치를 갖는다. 너무 다르지만, 어쩌면 그러기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렸는지도 모른다. 마치 자석의 다른 극끼리 서로 끌어당기듯이. 



사쿠라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도 너무나 담대한 반응을 보이는 시가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늘 밝고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무척 두려웠을 것이다. 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자신이 곧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을 알아버리면 그 두려움을 감당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쿠라는 가족 외에는 그 비밀을 누구하고도 공유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인 교코에게까지 함구했던 그녀는, 어쩌면 누구라도 '함께'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도 담대한 반응을 보이는 시가를 보고. 이 아이라면 온전하게 나를 바라보고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을 듯싶다. 



누군가와 엮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던 시가와 사쿠라는 언뜻 완전히 정반대의 사고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 혹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서로에게서 찾았기 때문에 그런 슬픈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동지'가 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이해하는 덴, 굳이 많은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언제나 사소한 이유 하나 때문에 시작하게 된다. 관계란 그렇다. 



이 영화는 단순한 하이틴 로맨스 영화는 아니다. 한 남자의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소설하고는 다른 구성이지만, 시가는 사쿠라의 말 한마디 때문에 결국 교사가 되고 모교에 부임하기까지 한다. 흔히 여성이 남성보다 더 빨리 성숙하고 어른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철부지 개구장이 악동들은 사춘기를 겪으며 비로소 '사내'로서의 통과의례를 겪는다. 그리고 그 통과의례의 중심에는 풋풋한 첫사랑이 있다. 시가에겐 사쿠라가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무척 성가신 존재로만 여겼던 그녀. 늘 제멋대로도 일방적이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은 이상한 감정. 이리저리 끌려다니지만 점차 그 안에서 '이유'와 '감정'을 찾게 되는 여정은 늘 타인과 경계를 두며 살았던 '시가'를 변화시켜 간다. 

소설하고는 다르게 어른이 된 '나'를 보여주고 있는 영화에선, 조금 다른 관점으로 진행되기는 하나 분명 그를 바꾼 스승은 사쿠라일 것이다. 그리고 실은 그녀 또한 시가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학습하고 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좋은 스승이었고, 좋은 친구였으며, 그리고 좋은 '연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영화들이 인상적인 '고백'을 보여줘 왔다. 이를 테면 '러브 액추어리'의 그 유명한 스케치북 프러포즈라든가, 이와이 순지의 출세작 '러브 레터'에서의 '오 겐키 데스카' 같은. 오랫동안 관객들의 뇌리에 남는 이런 고백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말미에 나오는 사쿠라의 고백 또한 같은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누군가를 절실히 닮고 싶은 감정, 나는 네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표현이 아쉽다. 그러기에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다. 프레이저가 제창한 동감주술의 원형. 비슷한 것끼리는 서로 공감하여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나는 너의 췌장을 먹음으로써 너는 내 일부가 된다. 

이토록 절절한 고백이 또 있을까?



나 또한 당신의 00를 먹고 싶다, 라는 고백을 하고 싶게 만드는....


하나, 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시가가 사쿠라의 모친을 찾아갔을 때의 장면이다.

사쿠라가 남긴 노트를 읽고 나서, 시가는 이렇게 부탁을 한다.


"어머니, 죄송하지만 울어도 되겠습니까?"

 

눈물은 가장 솔직한 감정이다.

타인과 교감을 거부했던 시가는 그렇게 처음으로 남 앞에서 우는 것을 허락을 구하면서 스스로 변해가고 있음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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