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용 카세트테이프 #37
2019년 10월 17일
그녀와의 첫 만남은 진료실에서였다. 물리치료사인 내게 목 디스크 치료를 받기 위해 방문한 환자였다. 신원 확인, 증상 체크, 치료 계획 수립. 일상적인 진료 과정이었다. 리사 킴. 서른셋. 음향 엔지니어. 차트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목과 어깨 통증이 기록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번호 하나에 불과했다. 주 3회 치료, 6주 코스.
네 번째 세션에서 목 뒤쪽의 흉터를 발견했다. 최근의 상처가 아닌, 오래된 상흔이었다. “이 상처는 어떻게 된 건가요?” 잠깐의 침묵 후, 그녀가 말했다. “일주일 만에 두 번이나 떨어졌어요. 꽤 인상적이죠?” 가사였다. 라디오헤드의 ‘High and Dry‘. 그녀는 상처의 출처를 가사로 인용한 것이다. 당혹스러웠으나 더 캐묻지 않았다. 환자들이 개인적인 질문을 회피하는 일은 흔했으니까.
치료가 진행되면서 척추 여러 곳에 미세 골절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 상처들이었다. 기록에는 교통사고 한 건밖에 없었는데, 이런 패턴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떨어진 사람의 척추처럼 보였다. “다른 사고도 있으셨나요?“ ”…내 안이 산산조각 나는 걸 알아채셨군요.“ 그녀는 또다시 가사를 인용했다. 환자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건 의료인 윤리에 어긋났다. 더 묻지 않았지만, 호기심은 커져갔다.
예정된 치료의 마지막 주. 증상은 호전되었고, 이상은 없었다. 마지막 세션을 끝내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거기서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퇴근길에 클리닉 앞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저녁 함께 가시죠.“ 부드러운 제안이 아니라 단호한 선언이었다. 물론 거절할 이유가 없다. 솔직히, 함께하고 싶었다.
식당에서 그녀는 자신에 관해 이야기했다. 맨해튼 소호 지역의 스튜디오에서 일한다고 했다. 주로 독립 영화 사운드트랙을 작업한다고.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그녀의 목소리에 활기가 돌았다. “손목에 있는 문신은 무엇인가요?“ 그녀의 왼쪽 손목에는 독특한 문신이 있었다. 기타 줄을 감는 튜닝 페그 형태. 여섯 개 중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기억 조율 장치예요. 가끔은 느슨하게 풀어줘야 해요.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니까.“
그날 밤 그녀의 아파트로 갔다.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의 오래된 양조장을 개조한 로프트였다. 천장은 높고 벽돌이 노출된 벽에는 비뚤어진 파이프들이 지나갔다. 음악 기기들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신디사이저, 믹싱 콘솔, 오래된 테이프 레코더들. 벽에는 낡은 LP 앨범들이 걸려 있었고, 그중에는 라디오헤드의 ‘The Bends’가 있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트랙이에요.“ 그녀가 앨범을 틀었다. 세 번째 트랙, ‘High and Dry’ 가 흘러나왔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까지 그녀는 이미 세 번의 자살 시도를 했었다. 음악이 그녀를 현실에 붙들어 놓았다. 정확히는 음악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아파트 구석에는 먼지 쌓인 첼로가 서 있었다. “지금도 연주하시나요?” “더 이상은 못해요.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아서요.”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새끼손가락과 약지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물리치료사로서 이런 증상을 놓친 것이 이상했다. 치료 기간 내내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언제부터 그랬나요?” “두 번째 추락 이후부터요.”
다시 그 단어였다. ‘추락’. 의미를 묻고 싶었지만,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닫혔다. 대신 첼로 이야기를 꺼냈다. “줄리아드에서 첼로를 전공했어요. 졸업 직전에 그만뒀지만요.” “왜 그만두셨나요?” “음악이 너무 완벽해지고 있었어요. 완벽함은 죽음과 같으니까요.” 그녀의 말은 불분명한 수수께끼 같았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실이 느껴졌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녀의 언어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가까워졌다. 교제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처음으로 그녀의 오토바이에 올랐다. 뉴욕을 벗어나 롱아일랜드 해안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녀의 등 뒤에 앉아 있는 동안, 땅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감각이 들었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그 감각은 강해졌다. “속도를 줄여요!” 소리쳤지만 바람 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녀는 계속해서 속도를 높였다. 굽이치는 해안도로를 지날 때마다 심장이 멎을 듯했다. 공포와 전율이 동시에 밀려왔다.
몬탁 포인트 해변에 도착했을 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녀는 웃었다.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파괴하지 마세요. 멈추지 않기 위해서라도.” 또다시 가사였다. 그녀는 자신의 말이 아닌 다른 이들의 말을 빌려 속내를 전했다. 자신만의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해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11월의 바다는 차갑고 회색빛이었다. 인적 없는 해변이었다. “여기서 첫 번째 추락이 있었어요.”
그녀의 말에 긴장했다. 드디어 그 ‘추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싶었다. “어떤 추락인가요?” “보통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종류죠.” 그녀는 웃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열여덟 살 때였어요. 줄리아드 입학 전이었죠. 여름 방학에 친구들과 이 해변에 왔었어요. 저 바위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그녀가 가리킨 곳을 보니, 해변 끝에 15미터 높이의 바위 절벽이 있었다. 아래는 바다였지만, 조수 상태에 따라 바위가 드러날 위험한 곳이었다. “뛰어내렸는데, 물이 생각보다 얕았어요. 척추가 바위에 부딪혔죠. 거의 죽을 뻔했어요. 세 달간 병원 신세를 졌고, 그 후로 계속 통증이 있었어요.” 처음으로 솔직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물리치료사로서 그런 부상이 얼마나 심각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첼로를 그만둔 건가요? 손 떨림 때문에?” “아뇨, 그건 두 번째 추락 때문이에요.” 그녀는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자신을 드러냈다고 느끼는 듯했다. 더 묻지 않았다. 그녀의 속도를 존중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주황빛 광선이 바다 위로 길게 늘어지며 찬란한 길을 만들었다. 그녀는 그 빛의 길을 향해 걸어갔다. 파도가 그녀의 발목을 적셨다. 11월의 바닷물은 차가웠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물이 차갑네요.”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만 차가워요. 그 이후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 말투에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실이 느껴졌다. 그녀는 종종 이렇게 했던 건지도 모른다. 차가운 바다에 들어가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그날 밤, 몬탁의 작은 모텔에 묵었다.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창가에 서서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실루엣은 섬세하고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깊은 고독을 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오늘이 그날이에요. 첫 번째 추락이 있었던 날.” 달력을 확인했다. 11월 18일이었다. “일종의 기념일인가요?” “생일 같은 거예요. 다른 사람이 된 날이니까.” 그녀는 침대로 돌아왔다. 내 품에 몸을 맡겼다. 체온이 낮았다. 오래도록 차가운 물속에 있었던 사람처럼. “당신이 날 따뜻하게 해 줘요.” 그날 밤, 그녀는 오래도록 울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단지 안아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이미 깨어나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모텔 메모지에 연필로. 내용을 물었더니, 그녀는 종이를 접어 내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읽어요. 내가 사라진 후에.” “무슨 소리예요? 어디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모든 사람은 언젠가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세상의 법칙이죠.”
모텔을 나와 오토바이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어제의 광기 어린 질주가 무색하게. 뉴욕으로 돌아와 그녀의 아파트 앞에 섰을 때, 처음으로 그녀가 먼저 키스했다. “진심으로 고마워요.” 그렇게 말한 뒤 아파트 안으로 사라졌다. 주말 내내 연락이 없었다. 문자도, 전화도 없었다. 월요일 아침에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걱정되어 점심시간에 그녀의 아파트로 갔다.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건물 관리인에게 물었다. 그녀가 전날 아침에 나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가방 하나만 들고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셔츠 주머니에서 그녀의 메모를 발견했다. 열어보니 악보 같았다. 정확히는 악보의 일부. ‘High and Dry’의 코러스 부분이었다. 메모가 적혀 있었다. “두 번째 추락이 일어난 곳. 40.72, 72.90. 필요할 때 오세요.” 좌표였다. 구글맵으로 검색해 보니 롱아일랜드 사운드 북쪽 해안의 작은 등대였다. 뉴욕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
일주일 동안 그녀에게서 소식이 없었다.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그녀의 스튜디오에 연락해 보니 휴가 중이라고 했다. 미리 계획된 휴가였던 모양이다. 안심했다. 그 주 토요일, 좌표를 따라갔다. 등대는 작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폐등대였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음악 소리가 들렸다. LP 턴테이블에서 ‘High and Dry’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는 첼로가 놓여 있었다. 그녀의 첼로.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테이프 레코더가 있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두 번째 추락은 첫 번째보다 더 아팠어요.” 그녀의 목소리였다. “스물넷, 줄리아드 마지막 학기였어요. 졸업 연주회를 앞두고 있었죠.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연습했어요. 손가락에서 피가 날 때까지.”
긴 침묵 후에 테이프는 계속되었다. “어느 날, 연습실에서 쓰러졌어요. 과로와 영양실조였죠.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어요. 의사들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했지만, 저는 알았어요. 제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걸. 멈추라고.” 또다시 침묵. “하지만 멈출 수 없었어요. 졸업 연주회까지 2주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진통제, 항불안제, 무엇이든. 그날 밤, 이 등대에 왔어요. 혼자서. 첼로를 들고. 정상까지 올라가서 연주했어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마지막 음을 연주하고 나서, 첼로를 아래로 던졌어요. 그리고 뛰어내렸죠.”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뛰어내렸다고? 하지만 그녀는 살아있지 않은가? “운이 좋았어요. 바람이 불어 바위 대신 물에 떨어졌어요. 충격은 컸지만요. 수영할 힘도 없었어요. 마침 지나가던 어부가 저를 구했어요.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손가락이 영원히 말을 듣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테이프는 거기서 끝났다.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어디에 있는 걸까? 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걸까?
등대 안을 살펴보았다. 먼지 쌓인 구석에 작은 수첩이 떨어져 있었다. 집어 들어보니 일기장 같았다. 펼쳐보니 그녀의 글씨체였다. 한 페이지만 읽어보았다. “오늘도 꿈에서 엘리를 만났다. 늘 그렇듯이 먼저 등대에 도착해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하고 물었다.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엘리는 웃으며 첼로를 건넸다. 하지만 손이 떨려서 받을 수 없었다. 그러자 엘리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연주할게.’ 그녀가 활을 켜자 온 세상이 흔들렸다.”
일기장을 놓고 더 살펴보았지만 다른 건 없었다. 등대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등대 뒤편에는 작은 묘지가 있었다. 호기심에 발길을 옮겼다. 대부분 오래된 묘비들이었지만,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엘리자베스 킴, 1986-2010. 음악은 영원히.” 심장이 멎는 느낌이었다. 엘리자베스 킴? 리사 킴이 아니라? 2010년에 죽었다고? 하지만 그녀를 만난 건 2019년이었는데?
묘비 앞에는 신선한 꽃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방금 다녀간 듯했다. 꽃다발 사이에 작은 봉투가 끼워져 있었다. 열어보니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두 명의 젊은 여성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 똑같이 생긴 쌍둥이였다. 첼로를 든 여자와 피아노 앞에 앉은 여자. 뒤에는 글씨가 씌어 있었다. “엘리와 리사, 줄리아드 입학식, 2006.”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차로 돌아왔다. 대시보드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내가 놓지 않은 것이었다. 열어보니 또 다른 좌표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메모. “세 번째 추락. 아직 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곧.”
그날 밤, 호텔에 묵으며 엘리자베스 킴에 대해 검색했다. 지역 신문 기사를 찾았다. 2010년, 유망한 첼리스트가 롱아일랜드 사운드 해안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자살로 판단했고, 등대 아래 바위에서 산산조각 난 첼로가 함께 발견되었다고 했다. 기사에는 그녀의 사진이 있었다. 내가 알던 리사 킴과 닮아있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사진 속 여자는 더 부드러운 인상이었고, 눈매가 약간 달랐다.
다음 날 아침, 뉴욕으로 돌아가는 길에 줄리아드 음대에 전화했다. 2000년대 후반에 첼로를 전공한 엘리자베스 킴이라는 학생이 있었는지 물었다. 기록을 확인한 직원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재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했다고 확인해 주었다. “혹시 리사 킴이라는 학생도 있었나요? 비슷한 시기에.” 직원이 다시 확인했다. “네, 리사 킴이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쌍둥이 자매였어요. 첫 학기 후에 자퇴했지만요.” 쌍둥이 자매.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아있었다.
뉴욕으로 돌아와 그녀의 아파트를 찾았다. 여전히 문은 잠겨 있었고 응답이 없었다. 관리인을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지만, 그녀가 의도적으로 휴가를 떠난 것으로 보여 확신이 서지 않았다. 소호 지역의 음악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섀도우 사운드 랩’이라는 작은 간판이 붙은 지하 스튜디오였다. 안에는 몇 명의 음악가들이 작업 중이었다. 리사를 아는 사람을 찾자 한 남자가 다가왔다. “리사요? 프로듀서예요. 독립 영화 음악을 많이 맡았죠. 지금은 휴가 중이에요.” “언제 돌아오나요?” “말하지 않았어요. 개인 사정이라고만 했죠. 그녀답지 않게 갑작스러웠어요.” “그녀의 책상을 좀 볼 수 있을까요?” 남자는 의아해했지만, 내가 그녀의 남자친구라고 하자 허락해 주었다. “저기 구석에 있어요. 열쇠는 없고, 늘 열려 있어요.”
책상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떠나기 전에 완벽하게 정리한 듯했다. 서랍을 열자 일기장이 있었다.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 같아 망설였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들춰보았다. 일기장은 녹색 가죽 표지에 금색 테두리가 있었다. 자물쇠는 없었다. 펼쳐보니 단정한 필체로 꽉 채워져 있었다. 무작위로 한 페이지를 읽었다. “오늘 새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감독은 첼로 선율이 중심이 되는 사운드트랙을 원했다. 내가 연주할 수 없다고 말하자 실망한 눈치였다. 결국 세션 연주자를 고용하기로 했다. 내 귀로 듣고, 내 머릿속에서 음악이 흐르는데, 내 손가락은 그걸 표현할 수 없다. 엘리라면 어땠을까. 그녀는 모든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다. 나는 그림자일 뿐이다.”
몇 페이지를 넘겨보니 더 최근의, 11월 초 기록이 나왔다. “오늘로 엘리가 떠난 지 9년이 되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첼로는 영원히 그녀의 것. 음악은 그녀의 것. 나는 그저 그림자일 뿐. 마지막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세 번째 추락은 영원할 것이다.” 손이 떨렸다. 즉시 일기장을 가지고 경찰서로 향했다. 실종 신고를 했다. 담당 형사는 중년의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었다. 리 형사.
“킴 씨가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겼다고요?” 일기장을 건넸다. 형사는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표정이 굳어졌다. “휴대폰 위치 추적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결과는 없었다. 이미 꺼져 있었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도 확인했으나, 마지막 거래는 11월 18일, 우리가 몬탁 해변에 있었던 날 이후로 없었다. “그녀의 친척이나 가족은요?” “부모님이 캘리포니아에 계시는 걸로 알아요. 연락처는 모릅니다.” “알아보겠습니다. 킴 씨가 어디로 갔을지 생각나는 곳이 있나요?” 등대 이야기를 했다. 좌표와 그곳에서 발견한 것들. 그리고 ‘추락’에 대한 이야기. “대시보드에 있던 메모의, 그 세 번째 좌표는요?” 다른 종이를 꺼냈다. “40.87, 73.95입니다. 뉴저지 팰리세이즈 절벽이에요.”
형사는 메모를 적었다. “혹시 그녀가 자살을 암시하는 다른 행동을 보였나요?” 관계를 설명했다. 짧았지만 강렬했다고. 그녀의 이상한 행동들, 가사를 인용하는 습관, 첼로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쌍둥이 자매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2010년에 자살한…” 형사의 눈이 반짝였다. “엘리자베스 킴 사건이요? 알고 있습니다. 당시 신문에도 크게 났었죠. 첼로 연주자가 등대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 “네, 리사가 그녀의 쌍둥이 자매인 것 같아요.” 형사는 깊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패턴이 반복되고 있군요. 우려스럽습니다. 팰리세이즈 쪽에 순찰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이 지났다. 경찰은 여전히 그녀를 찾지 못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세 번째 추락. 아직 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곧.” 어느 날 저녁, 클리닉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편함에 편지 한 통이 있었다. 발신인은 없었다. 뜯어보니 종이 한 장이 들어있었다. 좌표와 함께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내일 오후 3시. 좌표는 아까 경찰에 알려준 것과 같았다. 뉴저지 팰리세이즈 절벽. 맨해튼에서 허드슨 강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절벽으로, 자살 명소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리 형사에게 전화했다. 편지를 설명하고 내일 그곳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형사는 동행하겠다고 했다. “혼자 가지 마세요. 위험할 수 있어요. 저희가 먼저 현장을 확인하겠습니다.” 다음 날, 지정된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경찰차 두 대가 이미 와 있었다. 리 형사가 다가왔다. “아직 아무도 없어요. 주변을 다 살펴봤습니다.” 절벽 위에 올라가 허드슨 강을 내려다보았다. 맞은편으로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져 있었다. 왜 그녀는 이곳을 골랐을까? 아름다운 전망 때문일까, 아니면 높이 때문일까? 한 시간이 지났다. 경찰은 이것이 장난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전화가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와주셔서 고마워요.” 그녀의 목소리였다. “어디 있어요?” 소리쳤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당신이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경찰은 필요 없었는데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이에요? 왜 사라진 거예요?” “엘리에 대해 알게 됐군요.” 그녀가 물었다. “네. 당신의 쌍둥이 자매.” “그녀는 완벽했어요.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영혼. 저는 늘 그림자였죠. 외형은 같았지만, 그녀에게는 제게 없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녀의 첼로를 간직했던 거군요.” “그녀의 모든 것을 가지려 했어요. 빈자리를 채우려고. 하지만 실패했어요.”
“리사, 제발 어디 있는지 말해줘요. 도울 수 있어요.” “이미 늦었어요. 결정했어요. 세 번째 추락이 오늘이에요.”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제발 그러지 마요. 만나서 이야기해요.” 간절히 부탁했다.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잠시나마 날 구해줬어요. 하지만 이건 내 여정이에요. 엘리를 만나러 가야 해요.” “엘리는 죽었어요. 당신도 그렇게 될 필요 없어요.” “엘리는 죽지 않았어요. 음악이 되었어요. 저도 그럴 거예요.”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리 형사에게 통화 내용을 전했다. 휴대폰 위치 추적을 시도했지만, 이미 꺼져 있었다. 절망적인 마음으로 주변을 다시 수색했다. 경찰관 한 명이 소리쳤다. 절벽 아래쪽 작은 오솔길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그쪽으로 뛰어갔다. 덤불 사이로 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니 작은 전망대가 나왔다. 그곳에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다. 그녀의 것이었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오토바이 옆에는 가방이 놓여 있었다. 안에는 테이프 레코더, LP 한 장, 그리고 봉투 하나가 들어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사진들이었다. 엘리자베스와 리사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사진들. 마지막 사진은 그녀와 내가 함께 찍은 것이었다. 몬탁 해변에서 찍은 사진. 기억에 없는 사진이었다. 리 형사가 다가왔다. “오토바이만 있고 그녀는 없군요.” 허드슨 강을 바라보았다. 강물은 어둡고 깊었다. 검게 빛나는 표면 아래로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뛰어내렸을까요?” “아직 모릅니다. 해안경비대에 수색을 요청했어요.”
테이프 레코더를 집어 들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세 번째 추락은 달라요.” 그녀의 목소리였다. “첫 번째는 사고였어요. 두 번째는 실패한 시도였고요. 이번엔 선택이에요. 엘리가 떠나고 나서, 저는 그녀의 삶을 살려고 했어요. 그녀의 첼로를 연주하려 했고, 그녀의 음악을 계속하려 했어요. 하지만 진짜 그녀가 될 수는 없었어요. 항상 가짜, 복사본, 그림자였죠.” 잠시 침묵 후 그녀는 계속했다. “당신을 만났을 때, 처음으로 제가 저로서 누군가에게 특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리사로서, 엘리의 그림자가 아닌 나 자신으로서. 하지만 그건 환상이었어요. 결국 당신에게도 진실을 말할 수 없었으니까요. 제가 누구인지, 왜 이렇게 됐는지.”
강물에 무언가 붉은빛이 번졌다. 경찰관들이 소리쳤다. 해안경비대 보트가 다가오고 있었다. 테이프는 계속되었다. “이것이 마지막 여행이에요. 이번엔 엘리처럼 첼로를 던지지 않을 거예요. 음악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다음 사람에게로. 테이프를 들어주세요.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해주세요. 그래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어요.” 테이프가 끝났다. 리 형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기 뭔가 떠오르고 있어요.” 해안경비대 보트가 강 중앙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 있었다. 적색 천 조각이었다. 그녀가 항상 목에 두르던 스카프였다.
수색은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강물이 그녀를 삼켰다. 공식적으로는 실종 상태였지만, 모두가 그녀가 자살했다고 믿었다. 한 달 후, 그녀의 부모님이 뉴욕에 왔다. 그녀의 아파트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그들은 내게 고마워했다. 딸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친구가 되어줘서.
킴 씨 부부는 60대 중반으로 보였다. 조용하고 예의 바른 부부였다. 미국에 온 지 40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들의 눈에서 깊은 슬픔이 느껴졌지만, 동시에 이미 익숙해진 듯한 체념도 보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리사는 엘리의 죽음 이후로 정상이 아니었어요. 끊임없이 자매를 찾아 헤맸죠. 때로는 그녀인 척하기도 했어요.” “그걸 알고 계셨어요?” 놀라 물었다. “물론이죠. 리사는 첼로를 연주할 줄 몰랐어요. 피아노가 그녀의 악기였죠. 하지만 엘리의 죽음 이후로, 첼로를 배우겠다고 했어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리사의 손 떨림은 연습 과정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첼로를 연주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서 온 심리적 증상이었던 것이다. “쌍둥이는 서로 특별한 유대가 있어요,” 킴 씨가 말했다. “한쪽이 떠나면, 남은 쪽은 불완전해져요. 리사는 자신의 반쪽을 잃은 후 온전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은 리사의 소지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도 돕겠다고 했다. 그녀의 방을 뒤지면서, 침대 밑에서 작은 목재 상자를 발견했다. 열어보니 테이프가 여러 개 들어있었다. 모두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1번부터 36번까지. 마지막 37번 테이프는 내가 가지고 있었다. 등대에서 들었던 그것.
테이프를 하나씩 들었다. 모두 비슷한 내용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러나 세부 사항이 조금씩 달랐다. 어떤 테이프에서는 엘리자베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고, 다른 테이프에서는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어떤 테이프에서는 리사가 엘리의 남자친구를 빼앗았다고 했고, 또 다른 테이프에서는 엘리가 리사의 남자친구를 빼앗았다고 했다.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면서 동시에 거짓이었는지도 모른다. 리사의 마음속에서 현실과 상상이 뒤섞여버린 것처럼. 마지막으로 발견한 것은 작은 노트였다. 그녀의 필체로 적혀 있었다. “형사님, 이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이야기가 남는다는 거예요. 음악처럼. 잘 들어보면, 모든 노래는 누군가의 이야기니까요.”
1년이 지났다. 나는 계속해서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하지만 무언가 변했다. 내 안에 공허함이 생겼다. 그녀가 남긴 빈자리. 채울 수 없는 공간. 어느 날, 낯선 여성이 클리닉을 찾아왔다. 목 디스크 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이름은 소피아 리.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동양계 미국인이었다. 첫 세션을 진행하면서, 그녀의 목 뒤쪽에 흉터를 발견했다. 리사와 같은 위치에. 질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과거의 유령을 쫓고 싶지 않았다.
치료가 끝날 무렵, 그녀가 물었다. “테이프는 들어보셨나요?” 심장이 멎는 듯했다. “어떤 테이프요?” “37번. 기록용 카세트테이프.”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어떻게 그녀가 그것을 알고 있는 걸까? “당신은 누구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중요하지 않아요,” 그녀가 미소 지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녀는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내게 건넸다. 열어보니 LP 레코드였다. 라디오헤드의 ‘The Bends’. “그녀는 죽지 않았어요,” 소피아가 말했다. “다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모든 음악이 그렇듯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뒤돌아보았다. “가끔은 음악을 들어봐요. 그녀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떠났다.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날 밤, LP를 틀었다. 세 번째 트랙, ‘High and Dry’가 흘러나왔다. 노래를 들으며 모텔에서 그녀가 준 메모를 다시 찾아보았다. 악보처럼 보였지만 뭔가 이상했다. 며칠에 걸쳐 자세히 살펴봤다. 음표와 쉼표의 배열이 특이했다. 음악 이론책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모스 부호에 대해 검색했다. 음표는 점, 쉼표는 선. 해독하는 데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당신이 날 찾는다면, 난 항상 이 노래 속에 있어요.”
메시지의 의미를 생각하며 LP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특별한 것은 없어 보였다. 일반적인 레코드였다. 여러 번 들었다. 가사를 분석했다. 음원을 컴퓨터로 분석해보기도 했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한 달 후, LP를 내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살펴보다가 앨범 재킷 안쪽 이음새에 뭔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꺼내보니 종이 한 장이었다. 그녀의 손글씨였다. “형사님, 이제 이야기가 끝났어요. 모든 추락은 끝났어요. 이제 난 음악이 되었어요. 영원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별이 빛나는 맨해튼의 밤이었다. 어딘가에 그녀가 있을까? 아니면 정말로 사라진 걸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테이프에, 음악에,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어쩌면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추락, 누군가의 상승, 누군가의 음악 속에. 그리고 가끔, 밤이 깊어질 때, ‘High and Dry’를 들으며 생각한다. 그녀는 정말로 나를 높고 메마른 곳에 남겨두고 떠난 걸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다른 현실로 가는 초대장이었을까? 형사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테이프 끝 —
기록용 카세트테이프 #38
2020년 10월 17일
형사님, 저는 그녀를 환자로 만났습니다. 물리치료사인 제게 목 디스크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였습니다. 소피아 리, 32세. 직업은 음악 교사.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목과 어깨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처음엔 수많은 환자 중 하나였습니다. 주 3회 치료, 6주 과정. 네 번째 세션에서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목 뒤쪽의 흉터. 최근의 상처가 아닌, 오래된 상흔이었습니다. “이 상처는 어떻게 된 건가요?” 침묵 후 그녀가 말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두 번이나 떨어졌어요. 꽤 인상적이죠?”
왠지 익숙한 대답이었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았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질문하려 했지만, 그녀가 먼저 말했습니다. “당신은 리사 킴에 대해 알고 있나요?” 심장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그 이름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녀를 찾지 못했고, 경찰은 결국 수사를 중단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실종 상태였지만, 대부분은 자살했다고 믿었습니다. “어떻게…” 목이 메었습니다. “그녀의 테이프를 들었나요?” 소피아가 물었습니다. “네.” “이제 당신 차례예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가방에서 테이프 레코더를 꺼냈습니다. 낡은 모델이었습니다. 리사가 사용하던 것과 똑같았습니다. “녹음을 시작하세요. ‘형사님, 저는 그녀를 환자로 만났습니다’라고 말하면서요.” “무슨 형사님이요? 난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들은 그저…”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해요,”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게 규칙이에요.” 혼란스러웠지만, 그녀의 눈빛에 무언가 강렬한 것이 있었습니다.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테이프 레코더의 녹음 버튼을 눌렀습니다. “형사님, 저는 그녀를 환자로 만났습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소피아는 미소 지었습니다. “잘했어요. 이제 다음 사람에게 전달할 차례예요.” “다음 사람이요? 누구요?” “아직 모르죠. 하지만 그녀는 당신을 찾아올 거예요. 모두가 그렇듯이.” 소피아는 일어나 문으로 향했습니다. 문손잡이를 잡기 전, 뒤돌아보았습니다. “기억해요. 이야기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살아있는 거예요. 그녀도, 당신도, 나도.” 그녀가 떠난 후, 테이프 레코더를 바라보았습니다. 방금 녹음한 내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누구에게 이것을 전달해야 할까요?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유리창에 빗방울이 흘러내렸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눈물처럼.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High and Dry’. 그 익숙한 멜로디. “Don’t leave me high. Don’t leave me dry.” 노래가 끝나자 라디오 진행자가 말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지금 들으신 곡은 특별 요청으로 틀어드렸습니다. 연락처를 남기지 않은 한 청취자로부터 온 요청인데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에게 전해주세요.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다음 테이프를 기다리세요.’” 손이 떨렸습니다. 우연일까요? 아니면…
테이프 레코더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 테이프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