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여전히 오후 다섯 시 삼십 분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동시에 여러 시간 속에 존재한다. 우체통 앞에 선 지금의 나, 증오로 가득 찼던 과거의 나, 용서를 배워가는 현재의 나. 우리는 모두 같은 육체를 공유하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 이것은 의식이 되었다. 녹슨 우체통은 오늘도 세 가지를 토해낸다. 고지서, 광고전단, 반송된 편지. 붉은 도장이 찍힌 봉투를 들고 있으면 누군가의 심장을 쥐고 있는 느낌이다. ‘수취인 불명’이라는 글자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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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촘촘한 그물이다. 그물코 사이로 기억들이 새어 나온다. 옆집 소년이 자전거를 탄다. 바퀴가 낙엽을 밟는다. 부서지는 소리. 8년 전 금고 속 서류를 찢던 소리와 닮았다.
어제 소년이 자전거에서 넘어졌다. 무릎에서 피가 흘렀다. 붉은색. 편지 도장과 같은 색. 약국에서 산 밴드를 건넸다. 소년은 울지 않았다. 묵묵히 상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네.”
짧은 대답. 상처를 받아들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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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용서합니다.”
봉투 속 편지에는 늘 같은 문장이 적혀있다. 누군가의 뼈를 묻어주는 일이다. 처음엔 거북했다. 거짓말이었다. 거짓말도 백 번 하면 진실이 된다더니, 이제 이 문장이 내 몸의 일부다.
어제는 다른 문장을 더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유령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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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 비친 나. 희미하다. 아마도, 이자를 미워하는 동안 나는 이 사람과 똑같은 유령이 되어가고 있었다. 증오는 거울이다. 미워하는 대상을 닮아간다.
그가 사라진 후 세상이 달라졌다. 회사 동료들과의 점심이 어색해졌다. 아내가 설거지하며 등을 돌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딸아이는 “안녕히.”라고 말하고 학교에 갔다. ‘다녀오겠습니다’가 아니라. 가족들은 내가 유령이 되어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집 안의 거울들을 치웠다. 면도용 작은 거울 하나만 남기고. 유령은 사라지지 않았다. 욕실 타일에, 창문에, 커피 잔 표면에 내 모습이 비쳤다. 점점 더 그를 닮아가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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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악몽을 꾸었다. 꿈에서는 늘 그를 쫓았다. 미로 골목을 돌고 돌아 마침내 붙잡으면, 거기에 서 있는 건 또 다른 나였다. 식은땀에 젖어 깨면 여전히 어둠이었다. 창밖으로 달빛만 흘러들었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수면제였다. 악몽을 피하려고. 점점 다른 것들도. 아침엔 각성제, 저녁엔 진정제. 약들은 서로 다른 시간을 만들어냈다. 여러 현실이 겹쳐지는 상황.
약국에서 처방전을 받을 때마다 약사가 물었다.
“부작용은 없으세요?”
있었다. 부작용이 아니라 목적이었다. 나를 지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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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래된 사진첩을 발견했다. 먼지를 털어내자 과거가 쏟아져 나왔다. 대학 시절 그와 찍은 사진들. 술에 취해 어깨동무하고 웃는 모습. 회사 창립 기념파티 사진. 꿈에 부푼 우리들. 사진 속에서 우리는 아직 순수했다.
손끝으로 사진을 더듬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했다. 그도, 나도, 우리가 꿈꾸던 모든 것들도. 완벽한 순수도, 완벽한 악도 없었다.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
편지를 쓴 건 그날 밤이었다. 책상에 앉아 만년필을 꺼냈다. 잉크가 말랐나 봐서 몇 번 흔들었다. 검은 잉크가 종이에 번졌다. 참았던 눈물이 번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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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용서합니다.”
처음 써낸 문장은 떨렸다. 손가락이, 심장이, 영혼이. 거짓말이었다.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는 순간 작은 평화가 찾아왔다.
매주 한 통씩 편지를 보냈다. 그의 마지막 주소로.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아니, 돌아오길 바라면서. 편지들은 어김없이 반송되어 왔다. 메아리가 되어. 보낸 용서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식이 변했다. 매주 보내던 편지가 한 달에 한 번으로, 다시 석 달에 한 번으로 줄었다. 문장은 동일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변하지 않는 진실인지, 변할 수 없는 거짓말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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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돌아온 건 스물한 번째 편지를 보낸 후였다. 대학생이 된 아이는 이제 아버지를 이해할 나이가 되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했다.
“심리학 공부해.”
“인간 마음이 궁금해서.”
피식 웃었다.
“나 때문이야?”
“아빠 때문만은 아니야.”
솔직한 대답이었다.
“아빠, 용서가 뭐라고 생각해?”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실 때 물었다.
“자신을 위한 선물 아닐까.”
“복수는?”
“자신에게 주는 독약.”
창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렀다.
“그럼 아빠는 언제부터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한 거야?”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대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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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그도 어딘가에서 편지를 쓰고 있을까. “나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우리 편지들이 우주 어딘가에서 서로 스쳐 지나가고 있을까.
가끔 이자를 거리에서 마주치는 상상을 한다. 서로 알아보고,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볼 것이다. 무슨 말을 할까. ‘잘 지내요?’, ‘미안해요?’, 아니면 고개만 끄덕일까.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지하철역에서. 멀리서. 하지만 다가가지 못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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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아파트에 돌아와 찬장을 연다. 술병들은 없다. 찻잔들이 놓여있다. 하나는 금이 가고, 하나는 이가 빠졌다. 완벽한 건 없다. 깨진 것들도 각자 아름다움이 있다.
‘금츠기’.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이어 붙이는 기술. 상처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강조한다. 금이 간 자리가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된다. 용서도 비슷하다. 상처를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위에 금을 바르는 일.
어제,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거울 앞에서, 작은 소리로.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오랜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알았다. 나는 그를 미워한 게 아니라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가 보여준 인간의 이면을. 우리 모두 내면에 잠든 그림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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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마지막 편지를 썼다.
“이제 우리는 자유입니다. 당신도, 저도.”
봉투를 붙이며 이해했다. 용서는 상대방이 아닌 자신을 향한 것이다. 그간의 편지들은 결국 내게 보내는 것이었다. 반송되어 돌아오는 편지들처럼, 용서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우체통에 넣지 않았다. 대신 태워버렸다. 재가 바람에 날렸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저녁이 되면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약 없이도 잠이 든다. 가끔 꿈에서 그를 만나지만 더 이상 악몽이 아니다. 우리는 옛 친구들처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깨어나면 기억나지 않지만 마음 한편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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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린다. 새하얀 눈송이들이 거리를 덮는다. 도시의 상처들이 하나씩 가려진다. 나는 걸어간다. 발자국이 눈 위에 남는다. 시간도 이렇게 흔적을 남긴다.
우체통 앞에 선다. 오후 다섯 시 삼십 분. 더 이상 편지는 없다. 괜찮다. 모든 의식에는 끝이 있다.
눈이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작고 여린 소리다.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