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가게의 진열장 유리가 오후의 햇살을 굴절시킨다. 먼지는 빛을 부수고, 그림자는 물건의 윤곽을 흐린다.
칠순의 주인장이 실내를 서성인다. 때로는 물건을 만지고, 때로는 그저 바라본다. "여기 있는 건 전부 살아있는 것들이지." 말을 마친 그가 책장 깊숙한 곳으로 손을 뻗는다. 아주 조심스럽게.
가게 안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 천장까지 쌓인 물건들은 저마다의 규칙으로 늙어간다. 철제는 녹을 품고, 나무는 휘어지고, 유리는 흐려진다. 파티나, 시간이 남긴 색.
1층 진열장의 70년대 세이코 시계. 6시 15분에 멈춘 시간. 누구의 퇴근 시간이었을까, 혹은 새벽의 출근 준비 시간이었을까. 시계공은 수리를 거절했다. 사흘 전의 대화가 되살아난다. "고장 난 거예요?" "아니야. 멈춘 거지." "그럼 고쳐야…" "그대로 두는 거야." 손이 유리면을 쓸었다. "이 시계는 이미 완성되었지." 잠깐의 침묵. "완성이라뇨?" "봐. 이 흐린 유리도, 닳은 숫자들도, 멈춘 시간도."
진열장 깊숙이 독일제 카메라가 놓여있다. 전쟁 중에 만들어진 라이카. 그날의 절망을 찍었을지도 모른다. 렌즈의 지문, 무거워진 셔터, 벗겨진 가죽. 수천 명의 시선이 지나간 자리.
책장에는 주인 모를 만년필이 잠들어있다. 해방 이후 만들어진 파카. 금속에는 녹이 피었고 펜촉은 굽었다. 잉크는 마른 지 오래. 숨겨야 했던 편지들을 썼을까. 아니면 도약의 설렘을. 쓰이지 못한 문장들이 여전히 펜촉 끝에 머무른다.
오랜 이발소 의자가 구석에 서있다. 가죽은 닳았고 등받이는 휘었다. 스프링은 느슨해졌다. 무수한 무게가 만든 자국들. 더 이상 편히 앉을 수는 없어도, 무게를 기억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떨어지던 소리, 면도기 지나가는 소리, 수건 개키는 소리.
"빈티지와 엔틱은 달라." 주인장이 축음기를 꺼내든다. "빈티지는 시간이 만든 거고." 레코드판을 올려놓는다. "엔틱은 시간을 견딘 거지." 바늘이 내려앉으며 잡음 섞인 재즈가 울린다. 긁힌 홈은 새로운 리듬이 되었다. 백 년 전 녹음에 백 년의 흠집이 더해진다. 온전하지 않아서 아름답다. 리드미컬한 트럼펫.
백 년 된 책장이 벽을 지탱한다. 선반은 휘었고 나사는 녹슬었다. 등받이는 갈라졌다. 한 시대를 지나온 나무. 배고픈 저녁들, 숨죽인 새벽들, 여름을 지낸 아침. 구석의 장식장 안에는 골동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도자기, 은제품, 청화백자들. 하나같이 흠집이 있다.
"봐." 주인장이 자신보다 오래된 거울을 들어 올린다. "흠집 없는 거울은 그냥 거울일 뿐이야." 은박이 벗겨진 자리가 불규칙하게 빛난다. 피난민의 절망, 귀환자의 기쁨, 재건의 희망을 담았을 표면.
완고하다. 수리를 거부하고, 닦아내도 다시 때가 타고, 광을 내도 빛나기를 거부한다. 철은 계속 녹슬고, 나무는 계속 휘어지고, 가죽은 계속 닳아간다.
주인장은 서랍을 연다. 안에는 일기장과 사진, 편지와 엽서가 가득하다. 청춘의 일기, 결혼식 사진, 전쟁터에서 온 편지. 한 사람의 생이 층층이 쌓여있다. "이건 팔 물건이 아니야." 서랍을 매만지며 주인장이 말한다. "보관하는 거지." 손가락으로 나뭇결을 더듬는다. "누군가의 시간을."
먼지 속에 석양이 잠긴다. 주인장은 오늘도 물건들의 먼지를 털어낸다. 가라앉은 주홍이 가게를 채운다. 바랜 시계가 멈춘 시간을 가리키고, 녹슨 카메라가 어둠을 담아내고, 구부러진 만년필이 침묵을 기록한다.
파티나.
여기, 상처의 박물관에서.
우린 모두 불완전한 완성품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