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올 때면 조금 겁이 난다.
거리엔 바람이 먼저 도착하고, 사람들의 어깨는 눈보다 먼저 내려앉는다. 말이 줄고, 웃음도 몸을 움츠린다. 누구는 첫눈을 기다리지만, 나는 아직 겨울을 좋아할 만큼 단단해지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 곁에 붙는다.
온기를 나누는 법을 아는 사람들 곁에.
겨울의 시작은 국물이다. 냄비 속에서 김이 오르고, 젓가락이 부딪히며 소리를 낼 때, 얼어 있던 말들이 녹는다. 창밖을 지나는 사람의 발자국이 하얀 눈 위에 남고, 이내 지워진다. 그 찰나의 무늬들, 사라지는 것들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는 계절. 그렇게 나는 겨울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 있다.
전화기를 들어 이름을 누르고, 안부를 묻고, 오래된 메시지를 다시 열어보는 일. 조금 더 가까이 앉아보는 일. "겨울이라서 그래." 핑계 아닌 핑계 한마디면 다들 이해해 준다. 다들 자기 겨울을 건너는 중이라서.
함께여서 괜찮았던 날들, 말없이 등을 토닥이고, 미지근한 커피도 괜찮다며 웃던 시간들.
나도 모르게, 봄이 오던 날.
늦은 겨울의 필름 한 통을 들고 사진관에 갔다. 필름을 현상하고 나오는 길, 손에는 따뜻한 사진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 낡은 코트를 입고 멋쩍은 웃음을 짓던 우리, 김 서린 유리창에 남긴 낙서, 난로 앞에서 졸고 있던 나. 잊은 줄 알았던 온기들이 거기에 있었다.
아, 나는 이번 겨울도 잘 건넜구나. 끝나야 비로소 실감이 온다. 그래, 낡은 필름을 꺼내 다시 비춰보듯.
마른 나뭇가지에 연두가 돋고,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돈다. 겨울을 보내는 법을 배웠고, 봄을 맞이하는 마음이 생겼다. 우리는 또 다른 계절의 곁에 와 있다. 여전히 서로를 데워가며.
그러니, 이 봄도 함께 걷자.
마지막 겨울의 필름을 가슴에 품은 채로.
등 굽은 어깨에 축복이 내리기를.
가진 것에 감사하며,
가질 것들이 궁금한 사람이기를.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새로움을 찾아내는 기쁨이 있기를.
창가에 기대어, 정겨운 음악을 들을 수 있기를.
걱정을 접어두고, 편안함에 이를 수 있기를.
밤하늘의 별을 보며 깊은숨을 쉴 수 있기를.
차 한 잔의 온기를 나눌 수 있기를.
혼자만의 침묵이 두렵지 않기를.
길가의 낙엽 하나에도 이야기가 있음을 알기를.
함께한 시간이 소중했음을.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갚아내는 당신이기를.
그리고 먼 훗날,
사진 속 젊은 우리 얼굴에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