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 <시와 산책>
올해 들어 첫 매미 소리를 듣는다. 아직은 온 힘을 다하지 않는 듯하지만, 점점 뜨거워지고 따가워질 울음이다. 매미는 자신의 마지막을 알아서 더 애태우는 것일까, 몰라서 열중할 수 있는 것일까.
성충이 되기까지 땅속에서의 긴 기다림에 비하면 한 달 남짓의 짧은 수명은 허망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인간의 귀에 성가실 정도로 요란한 소리여도 함부로 불평할 수는 없다. 그것을 가장 무릅쓰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매미이니 말이다.
8월이 가장 뜨거운 달이 되어버린 것은 이처럼 절정과 쇠락을 모두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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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은 이렇게 말해준다.
너의 조용한 빛은 눈에서 반짝이리니,
술이나 열정으로 이글거리는 눈을 가진 자들은 이렇게 물으리라.
"저 여자의 내면에 있는 불은 어떤 것이기에 그녀는 그을리지도, 연소되지도 않는 걸까?"
혹시 나에게는 불 대신 빛이 있을지. 불을 지를 수는 없지만 당신을 환하게 비출 수는 있을지. 은은하게 나의 사랑을 연명해나갈 수도 있을지.
벅찬 여름을 지나며, 그것을 지켜보기로 했다.
- 한정원 <시와 산책>
어마어마한 책을 만나고 있다. 처음엔 산책하듯 읽어볼까 싶었다. 하지만 어느 글 하나도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책이라고 인정하고 말았다. 겨울을 이야기하며 ‘흰빛’을 말하고 그리움을 말한다. 나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겨울에 반감은커녕, 오히려 그녀의 시선을 좇아가보려 했다. 구석진 골목을 걸으며 만나는 이름 모르는 인연들과 거리의 풍경들을 떠올린다. 강에서 만난 나이 든 이의 뒷모습에서 그를 경외심으로 바라본다. 연한 파란색으로 표시된 시어들은 자주 만나지 못했던 시에서 나왔고, 하나 둘 그 시인들과 시집의 제목들을 메모해 나갔다. 산책하며 만난 풍경과 시어들을 엮으며 자신의 감정을 말하고 있는 글들은 어지럽지 않고 오히려 기억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중간 즈음 만난 여름의 소리를 담은 글이다. 매미 소리라니. 쉴 틈 없이 내리는 빗소리가 지금 여름의 소리다. 매년 여름에 유난히 큰 매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창문을 닫기 바빴다. 매미의 짧은 삶도 연민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런데 매미 소리가 그리워질 줄이야. 오늘 잠시 비가 멈춘 사이에, 드디어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내린 후라 더 싱그러운 초록빛을 뽐내는 나뭇잎들을 올려다보니 매미 소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들렸다. 딸도 오랜만에 듣는 매미 소리가 반가운지 매미들이 드디어 나왔다며 ‘맴맴~’거렸다. 이 녀석들도 참 오래 기다렸을 거다.
나에게 여름은 봄을 얼른 보내버리고 가을이 쉬이 오지 않게 하는 그런 계절이었다. 늘 얼른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아마 이렇게 여름에만 유독 못되게 구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올해 여름은 왠지 안쓰럽다. 여름이 여름답지 않게 힘도 한 번 제대로 못 써 보고 가겠다 싶은 거다. 매미도, 초록 나뭇잎들도, 여름만 되면 마음껏 허용되는 물놀이를 지칠 정도로 즐기지 못하는 아이들도. 그러니 작별 인사를 할 땐 ‘다시 얼른 돌아와’ 하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더 영글어지길 바라는 나의 여름도 잘 지켜내며 여름을 조금은 더 잘 보내주고 싶은 마음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