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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Aug 08. 2020

서로의 안위를 묻는 것

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


나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심지어 지구가 황폐해지더라도


인간의 삶과 문화적 풍요는


생존할 것이라는 희망을 감히 품는다.






- 올리버 색스






올리버 색스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지금의 시기를 견디는 독자들에게 안부를 묻는 책이다. 이 시간들을 함께 견디고 있는 시대의 공감이자 중요한 것을 되새겨보는 작가들의 이야기다. 이미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시인, 에세이스트, 화가들이 건네는 인사와도 같은 글들과 그림들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가 위로를 듣고 싶었나보다. 나에게 하는 이야기라는 듯이 고스란히 몸에도 마음에도 담아내듯이 읽어 내려갔다.






읽다가 고개를 드니 마침 비가 내린다. 초록은 더 진한 초록으로 만들면서 나뭇가지들을 마음껏 흔들며 비가 내리고 있다. 봄이어도 내 마음이 늘 비가 오는 날처럼 잔뜩 젖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니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그냥 애처롭다.






사랑하는 타인의 자는 얼굴을 마주보며 단순히 웃기거나, 평화로워 보인다거나 하는 것을 넘어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은 왜일까. 김소연 시인은 <마음 사전>이라는 책에서 연민이라는 감정을 ‘대상에 대한 합일’에서 생기는 것으로 정의한다. ‘너’와 ‘내’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정말 믿어짐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너’의 자는 얼굴은 ‘나’에게 거부할 수 없는 비감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매일 실감하며 요즘을 지낸다.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자는 얼굴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는 것처럼 모두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루씩 하루씩을 견디고 있다. 다드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위아래와 조소정의 자는 얼굴을 상상하면서 가만히 궁금했다.


- 신요조 <자는 얼굴>







요조의 글에서 한참 머무른다. 앞 장에 적힌 글을 읽고 바로 이어지는 글을 또 읽는다. 자는 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연민의 감정에 차서 바라보고 생각하게 되는 것을 말하며 안위를 걱정하는 그녀의 마음이 글 속에 묻어 있다, 그녀의 감정에 내 감정도 가져간다.






언젠가 지금의 신랑과 낯선 곳에서 시간을 보낼 때 그의 어깨에 기대어 TV를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었다. 너무나 고된 시간들을 보내다가 긴장이 풀려서인지 침까지 흘리면서 잠이 들었다. 깨어나 얼굴이 빨개진 내 모습을 보며 웃으면서 볼을 쓰다듬어 주었었다. 그도 장난스럽게 내가 잘 때 입을 헤~ 벌리고 잔다며 웃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요즘은 그런 농담을 못하고 지낸다.






우리 모녀가 잠든 모습을 살짝 들여다보고 출근하러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볼 때가 있다. 일부러 따라 나서지 않고 가만히 그 까만 뒷모습을 바라보고 다시 잠이 든다. 백 마디 말과 행동보다 그의 뒷모습에서 오히려 확실한 애정을 확인하고 안심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저녁에 그는 웃으면서 꼭 말한다. 모녀가 똑같이 자더라고. 그의 자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제 연민의 감정이 먼저 앞선다. 코를 골아도 밉지 않고 가만히 안경을 벗겨주고 불을 끈다. 하루하루 그의 무사함을 확인하는 순간 모든 권태로움이 사라진다. 그가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행여 미운 감정이 올라오려 해도 그의 손짓 한 번에 한없이 풀어지고 마는 요즘이다.







이렇게 잠든 모습에서도 서로의 안위를 확인한다. 그 안위를 확인하면서, 무엇이 소중한지를 비로소 절실하게 깨닫는다. 대단한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한다. 그래서 비록 이 상황이 이어지고 여전히 불만을 토로하게 될지라도 아직은 괜찮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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