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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Aug 29. 2020

설득 / 제인오스틴



제인오스틴이 남긴 마지막 소설이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오빠에 의해 세상에 나오게 된 유고 소설이다. 소설의 줄거리만 간단히 보자면 그녀의 여느 작품들처럼 이 책에서도 가족과 사랑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느 작품이랑 다른 것은 두 주인공의 이야기와 가족의 모습들이다. 두 연인은 헤어지고 8년이 지난 후 과거와 달라진 처지에서 재회를 한다. 앤의 가족은 기울어진 가정 경계로 인해 집을 내놓는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앤의 아버지 월터 경과 언니인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여전히 자신의 처지를 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월이 흘러가며 보이는 앤의 외모의 변화역시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인데 그대로 그려낸다. 물론 이 부분이 있어서 오히려 후에 앤이 이전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현명하게 빛나는 모습이 더 강조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인 오스틴은 이것까지 생각했겠지)



소설은 연인의 헤어짐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어른들의 앤을 향한 설득을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람들을 둘러싸고 설득은 눈에 띄게 크게 혹은 은근히 이뤄진다. 가정의 경제가 흔들리자 주변인들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권한다. 이미 시작된 설득의 이야기다. 그들의 설득은 옳았을까? 그것을 판단하기에 앞서서 이미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머뭇거림이 없다.



“앤은 그가 전에 가졌던 생각, 즉 단호한 성격이 항상 좋은 결과만을 낳는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견해가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이제 의문을 갖게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 정신의 모든 다른 면들이 그렇듯이 단호함에도 정도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젠 깨달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때로는 남의 설득을 받아들일 줄 아는 성격이 단호한 성격만큼이나 우리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그가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 설득/민음사 175p



앤은 주변인들의 설득, 특히 그녀가 어머니처럼 따르며 가장 믿고 의지하는 어른인 레이디 러셀의 설득으로 사랑을 저버리기로 하였다. 8년 동안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녀를 다시 두근거리게 하였다. “젊은 시절 신중을 강요당했던 그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로맨스에 대해서, 그러니까 서투른 시작의 자연스러운 결론에 대해서 배우게 된 것이다.”(47p) 긴 시간동안 그녀 스스로는 세월을 견뎌오고 그것이 현명한 여인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라 믿었다. 그녀에게는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었다. 그녀가 그 사이에 결혼을 할 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제인오스틴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하였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어색한 재회를 한다. 너무나 냉정하게 예의를 차린 그의 모습에서 그녀는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 노력한다. 겉에서 보이는 분위기들에 두 사람은 영향을 받고 오해하기도 하고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 극적으로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은 여러 번 읽어도 지치지 않는다. ‘편지’라는 매개체가 이렇게나 강하다는 걸 다시 확인하면서 말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중심을 이룰 거라고 생각했던 처음 나의 예감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오히려 그 주변인의 이야기들에도 나는 충분히 이끌렸다. 겉치레로도 충분히 자신의 가치를 빛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소탈한 모습을 보이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노부부. 여전히 철없는 동생. 자신의 모습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 우리를 둘러싼 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많은 시간들에 알게 모르게 존재했던 다른 사람들의 권유라는 이름 아래에서의 설득들.



과연 나는 현명한 모습으로 내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녀가 산책을 통해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운동과 날씨, 황갈색 이파리들과 시들어 가는 생 울타리, 가을에 관한 수천의 시적 묘사들 중 몇 편을 스스로 되뇌는 것뿐이었다. 가을은 훌륭한 취향과 민감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특별한 영향을 한없이 끼치는 계절이라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닌 시인이라면 누구든 이 계절에 대한 묘사와 감회의 글줄을 어떤 식으로라도 남기려고 시도했으니 말이다.

- 설득/민음사 126p



그리고 앤이 산책을 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했던 이 부분을 나는 좋아했다. 여전히 묘사를 이루는 부분을 나는 좋아한다. 어려운 문장으로 말하지 않는다.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그려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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