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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Aug 05. 2020

{함연:7월} 우리의 이야기들이 지나가고 난 후

온라인 독서모임 : 함연 


코로나19시기부터 나의 모든 감각은 위축되었다. 어떤 TV프로그램을 보아도 음악을 들어도 무신경한 감각을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놓지 못했던 것은 그저 종이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어떤 뚜렷한 기록을 남기기보다 그 순간을 어떻게든 버텨내며 내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였다.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야 이제는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완전히 인정하였다. 그리고 홀로 읽는 것이 너무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얼굴을 마주 보며 목소리를 듣고, 그 순간에 흘러드는 공기가 그리웠다. 그럴 수 없어서 더 외로웠다. 그럼에도 한 권의 책을 누군가와 함께 읽고 싶었다. 이 마음에 용기 2그램을 더해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기로 마음먹은 것은 <제인오스틴의 말들>을 읽고 나서였다. 그리고 시집 한 권을 읽고는 그 두 권의 감정이 묘하게 맞물려 있는 것을 느꼈다. -홀로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두 권을 함께 읽는 것으로, 함연의 두 번째 시즌을 시작해보자 마음먹었다. 시기부터, 나의 운영 방식을 또 여러 번 바꿔가며 최종적으로 결정지었고 기꺼이 함께 하리라 손 들어준 분들과 시작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 <제인오스틴의 말들>과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시집 1권을 함께 읽어 나갔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고 영화로 만들어지며 사랑받아 온 제인오스틴의 책속 글들과 그녀의 편지들을 엮은 책이었다. 흔히 결혼과 사랑이야기로 치부되기도 하던 그녀의 문학 속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그녀의 말들이 있었다. 결혼하지 않고 소설 작품만을 썼던 그녀는 가족들 이야기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과 세계를 들여다보는 가치관들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때로는 그녀의 당돌함에 웃음을,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의 글은 시대를 떠나서 지금도 충분히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완벽한 그녀의 공간이 없었어도 그녀는 작품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를 지지해주는 가족들 덕분에 우리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녀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우리는 빚을 졌다.





“침착해야 해. 나 자신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해.”


“누구나 가만히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자기 자신에게서 다른 누구보다 훌륭한 길잡이를 발견할 수 있답니다.”


“너의 행복을 가장 잘 판단하는 사람은 너 자신인 거야.”


<제인오스틴의 말들>



자기계발서보다 내가 소설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은, 이렇게 여러 방법으로 작가는 끊임없이 말을 건다는 것을 읽는 사람만이 느끼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특별한 느낌을 안겨준다. 결국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것보다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





이원하 시인의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는 얼마나 더 마음을 아리게도 하였다가 웃음도 짓게 했다가 다시 또 한없이 이해하게도 하였는지 모른다. 아직도 시집은 여전히 어렵고 뭔가를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먼저 앞서곤 한다. 하지만 이 시집은 넘기자마자 나의 긴장감을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세상의 많은 일들은 왜 그럴까요



한 문장으로 정리를 해보면



고작이지만



식물이 손가락을 펼 때는


미풍이 불기 때문 아닐까요



-하나 남은 바다에 부는 바람 중에서




시는 정말이지 함께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호흡을 나누고, 낭독을 하며 시를 만나는 것이 제일 이었을 거다. 아쉽지만 우리는 다른 공간과 다른 공기, 다른 시간들에서 시를 만났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시간에는 서로 다른 시를 말하며 공감하기도 하며 감정을 나누었다. 그것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자기계발서, 성공 철학 도서, 벽돌책 등 다양하게 읽어나가며 책 읽기를 독려한다. 하지만 그에 반하며 나는 ‘문학’도서만을 고집하기로 했다. 치열한 토론을 하며 성장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모임도 물론 많으며, 그들의 발전도 응원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모임’, ‘함연’에서만은 그 어떤 치열한 토론문화를 일부러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감정과, 우리가 놓쳤을지도 모를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 감정이 똑같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외롭지 않음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라며 모임을 진행하였다. 이 모임이 만족스러웠을 수도 혹은 자신의 생각과 달랐을 수도 있지만 ‘함연’을 만든 나의 이 생각들이 지금의 나에겐 모임을 만든 절실한 이유가 되었다. ‘함연’은 비록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 나누는 독서모임만큼의 그 무언의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할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 읽는 일상에서 서로가 ‘책벗’이 되어줄 수 있는 그 시작으로 이어 줄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시작을 함께 해 준 이들에게, 감사함을 함께 전하며 그 시간을 기억에 담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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