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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Jul 31. 2020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 펭귄클래식코리아

"그렇다. 결국엔 개츠비가 옳았다. 인간의 속절없는 슬픔과 숨 가쁜 환희에 대해 한동안 관심을 끊었던 것도 개츠비를 희생물로 삼은 것, 그의 꿈이 사라진 자리에 비참하게 나풀거리던 더러운 먼지 때문이었다."

- 15p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는 고전이다. 영화의 화려한 단상들을 자꾸 떠올리며 책을 읽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영화의 화려함이 워낙 강했으니 말이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살아있다면 그들과 같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영화를 넘어서서 글만으로 오감을 깨우는 걸 느끼는 건 책을 읽는 자만 가질 수 있는 축복이다. 



닉은 처음에는 오해로 시작하여, 신뢰하였다가 다시 또 망설이다가 끝내는 개츠비의 마지막을 외롭지 않게 지켜주고자 하는 단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 그의 초록색 불빛을 향한 시선이 결국 그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그는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건 이해하는 것 이상의 친근한 미소였다. 일생에서 몇 번 경험하기 어려운, 영원한 확신을 약속하는 듯한 그런 보기 드문 미소였다. 순간적으로 영원의 세계와 마주했다가-혹은 마주한 듯 보였다가는-곧 거부할 수 없는 무한한 애정을 담아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그런 미소. 또한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만큼 당신을 이해하고 있으며, 당신이 스스로를 믿고 싶은 만큼 당신을 믿고 있으며, 당신이 전하고 싶은 만큼 최고의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확인시켜 주는 그런 미소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미소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서른 한 두 살 가량의 기품 있지만 다소 거칠어 보이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격식을 차린 그의 말투는 자칫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그가 자신을 소개하기 전까지는 그가 말을 세심하게 골라서 쓰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68~69p



한 번의 미소와 미소가 끝난 뒤의 표정에서 닉은 세심하게 그를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그에게는, 이웃집에 사는 젊은 청년이 그의 일상에 들어온 것 자체에서 다른 이들보다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거다. 개츠비 저택에서의 파티에 자리한 이들의 쾌락을 좇는 모습들과 겉으로 보이는 모습 뒤의 초라한 모습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예리하다. 개츠비가 보여주는 훈장 역시 그에게는 믿음을 안겨주지만 피츠제럴드는 그것이 의미할 수 있는 '허위'를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작가는 그가 펴 낸 소설의 성공만큼 나은 삶을 살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비참했지만) 그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오래 읽힐만한 책을 쓴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데이지가 갑자기 그에게 팔짱을 껴왔지만, 개츠비는 방금 자신이 한 말에 푹 빠져 있는 듯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 초록색 불빛의 거대한 의미가 이제 막 영원히 사라져버렸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와 데이지를 갈라놓았던 그 엄청난 거리에 비하면 이제는 그녀가 손에 닿을 만큼, 달 주위에서 반짝이는 별만큼이나 가까워진 느낌인 것이다. 다시 부두에서 초록색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제 매혹의 대상 중 하나가 줄어든 셈이다."

-123p



나는 이 문장에 정말 사로잡혔다. 데이지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고, 닉에게 부탁하며 데이지와 다시 재회할 때 그의 모습이 떠오름은 당연하다. 초록 불빛, 거대한 하나의 불빛으로 여겼던 데이지의 존재가 지금 바로 곁에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이 매달려 온 것이 사라져버린 느낌으로, 기쁨보다는 허탈감을 더 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불빛은 그를 마지막까지 멈추지 못하게 한다. 



"개츠비는 오로지 초록색 불빛만을 믿었다. 그것은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는 가슴 벅찬 미래였다. 그 미래가 우리를 교묘히 피해 간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더 멀리 팔을 뻗을 테니까... 그러면 마침내 어느 상쾌한 아침에..

그렇게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231p



화려한 그의 모습에서 닉이 바라본 것은 결국 초록색 불빛만을 믿었던 사람의 등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어렸고 어리석었던 사람들의 모습에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굳게 닫힌 해변의 저택을 바라본다. 더 이상 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는 곳을 쳐다본다. 그의 화려했던 파티들과 수많은 사람들, 그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 그의 사랑조차도 말이다. 닉은 그의 모습만으로 구체화되는 모습이 아닌 '우리'들마저 해당될 수밖에 없는 과거로의 회귀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다시 또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모습들을 말이다.



영화를 본 순간에는 그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모습만이 기억에 남는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의 표정이 변하는 순간순간의 모습들이 더 뇌리에 남게 되었다. 여전히 지금에도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들, 세속적인 모습들이 함께 떠오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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