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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Sep 09. 2020

뭉그적뭉그적, 나의 자리를 찾는 힘을

은유 <올드걸의 시집>

그것은 다른 시간이리라. 그 시간을 다른 여인이 살게 되리라.

그 시간은 다른 세계에 존재하리라.

그 세계가 다른 삶을 열어 주리라.


- 파스칼 키냐르 <빌라 아말리아>


그렇게나 중고로도 구하기 힘들었던 책이었는데, 복간되어 나왔다. 너무 기쁜 소식에 얼른 들여놓고는 이제서야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이미 <쓰기의 말들> <쓰기의 최전선> <싸우면서 투명해진다> ... 많은 책으로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런 그녀의 첫 산문집을 찾는 이들이 많아서 다시 나오게 되니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 모른다. 복간된 판본이라, 기존 책에 있던 서문의 앞에 두 번째 서문을 추가로 넣었다. 그녀는 두 번째 서문에서 말한다.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으로 인간의 품위를 지키고 싶었던 한 여자의 분투, 수없이 무너졌던 실패의 기록을 너그러이 품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라고. 그녀가 블로그에 시 한편과 그녀의 생각들을 담은 글들은 그 자체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은유'작가를 독자들이 알아보게 하였다. 그녀의 많은 책들이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이를 향한 마음을 담았다면 이 책은 '시'에 자신의 마음들을 내비친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나는 여전히 왕성하게 분열 중인 세포를 발견했다. 두루두루 참을 만하다가도 견딜 수 없어지는 순간에 불쑥 튀어 오르는 힘, 내 피만 알아차리는 저항. 그것은 한숨이나 눈물같은 울컥함으로 나타났다. 나는 불행을 예민하게 느꼈다. 내가 태어난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것은 아마도 본래적 자아로 회귀하려는 어떤 경향성일 것이다. 일상의 아수라장 안에서도 뭉그적뭉그적 나의 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힘이 있었으니, 그때마다 나는 어떤 소녀와 대면했다. (...) '올드걸'은 고정된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 방식이다. (...) 노트 하나 시집 한 권이면 족한 올드걸은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이 사회의 거미줄 같은 자본 시스템을 경유하지 않는 존재는 발굴되지도 부각되지 않는 법이니까. 또한 일상 생활에서 엄마 역할로 기능하면 딱히 드러날 기회가 없기도 하다.

- 서문 12p <올드걸의 시집>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손댈 수가 없을 때면, 나는 책꽂이 앞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손에 잡히는 시집을 빼서 시를 읽었다. 정신의 우물가에 앉아 한 30분씩 시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기계적으로 일하는 노예가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으면서 나는 나를 연민하고 생을 회의했다. 생이 가하는 폭력과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는 시. 고통스러운 감정은 정확하게 묘사하는 순간 멈춘다고 했던가. 마치 혈관주사처럼 피로 직진하는 시 덕분에 기력을 챙겼다. 꿈 같은 피안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남루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힘이 났다.

(...)

문학에 눈뜨는 일은 회의에 눈뜨는 일이고, 회의에 눈뜨는 일은 존재에 눈뜨는 일이었다.


- 16 p <올드걸의 시집>



내가 덧붙이는 글은 회색으로 보일 거다. 희미하게 투명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글은 마치 형광펜을 칠한 것처럼 후광을 지녔다. (차라리 그러면 좋지않을까 생각해보지만 그대로 둔다.) 사실 예전의 그녀 의 글을 읽을 때는 '동경'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사람들 내면과 외면까지 깊숙하게 들어가는 듯한 모습들을 보면 굉장히 먼 차원의 사람같은 느낌 이 들었다. 이제서야 그녀의 글에 더 열심히, 열렬하게 공감을 표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나에게도 "뭉그적뭉그적 나의 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힘"을 내게 하는 글들을 만날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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