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올드걸의 시집>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묵묵한 살아냄보다 무구한 조작이 우세할수록 삶은 꼬인다는 것. "나는 오해될 것"이고 "결국 나는 나를 비켜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오해받을지라도 순간의 진실을 추구하고,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며 살아갈 때만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삶은 변하는 것 같다. 살면서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들은 이름, 감각, 느낌, 음악, 이야기... 나에게 존재를 위해 금가루 뿌리는 일이란 음악이 내미는 손 잡는 것,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 주는 것, 느낌을 나누는 것. 그리 호사 누리며 살기로 한다."
- 은유 <올드걸의 시집> 71p
책장을 넘기면서 귀접이를 과김히 포기한 책이 몇 권 있다. 책 한 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할수록 귀접이를 처음 서문에서부터 포기해버린다. 이 책도 그러하다. 어디엔가 인용하기 위한 필요로 문장에 줄을 긋지 않는다. 문장이 그저 좋아서 줄을 긋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의 내 감정이 이 문장에 조금 더 가 있다는 온전한 자기 의식의 표현으로 줄을 긋는다. 이 책만은 그래도 된다는 생각에서다.
묵묵히 살아낸다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먼 일 같기도 한 이야기였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겪어낸 삶이어야 '묵묵히' 살아내는 것으로 그것들을 감내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바라보며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을 바라보면 나는 닮고싶은 이상한 선망을 갖는다. 나는 늘 묵묵하고 조용하게, 말을 적게 하는 것보다 먼저 침묵을 깨고 웃으며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조용히 주인공같은 사람보다 첫 침묵을 깨트리는 별 뜻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의 역할을 자처한다. 사실 나도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선망해왔는데 말이다. 말하지 않아서 더 궁금하고 말하지 않아서 더 호기심을 동반한 경외감을 갖게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더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묵묵하지만 그 조용한 침묵 속에서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해나가며 살아내야지 생각한다.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순간들은 명사로 멈춘 상태같지만 그 점같이 멈춘 것들이 모여서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나의 지금도.
그리고, 나도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고 느낌을 나누는 것으로도 충분히 큰 그 호사 누리며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