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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Nov 06. 2020

미완 혹은 미지에 묻힌.

오노레 드 발자크 / 미지의 걸작

발자크가 창조해 낸 수많은 인물들은 어떤 인물이건 간에 결코 미지근한 태도를 보여주는 법이 없다. 그의 작품들은 소설임에도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욕망 때문에 더욱 사실적인 생명력을 획득하게 된다. 인간의 결핍과 욕망을 무섭도록 직관한 그 통찰력이,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읽게 만드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발자크 자신이 결핍과 욕망을 쫓아 평생을 몸부림치며 살아왔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 <미지의 걸작> -10p (책머리)


흐트러진 머릿결, 까만 눈동자로 또렷하게 시선을 보내는 여인의 초상이 책의 표지에 자리해 있다.

초록색 표지를 지나, 오노레 드 발자크의 삶에 영향을 받은 이들의 이야기로 글은 시작한다.

그의 영향을 받은 로댕의 동상, 그의 영향을 받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야기.

속물인 동시에 결핍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발자크의 삶을 아주 짧지만 정수만을 모았다. 그의 글을 읽기 위해 더 필요했을 설명들이었다.



<미지의 걸작>이라고 이름을 붙인 책이지만, 처음 자리한 <영생의 묘약>은 그의 삶과도 직면해있는 많은 모습을 보여준 소설이었기에 쉬이 넘겨 읽어나갈 수가 없다. 그는 돈 후안을 통해 늙음과 죽음에 대한 소설을 만들어냈다.


돈 후안은 화려함, 기쁨, 웃음, 노래, 젊음, 아름다움, 권련 같은 삶의 모든 것들이 죽음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보며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경배할 만한 이탈리아에서는 방탕과 종교가 서로 아주 친밀하게 짝을 이루었다. 즉 종교는 방탕이었고 방탕은 종교였다! 왕자는 다정하게 돈 후안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슬픔과 무관심이 반씩 섞인 표정을 똑같이 짓고 있던 모든 인물들, 그 환영 같은 인물들이 동시에 사라져버렸다. 방은 텅 비었다. 이것이 바로 삶의 모습이었다!

- <명생의 요약> 34p



그리고 <미지의 걸작>, 회화에 대한 그의 철학적 사유를 소설로 풀어냈다. 당시 그의 글을 읽은 많은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은 이 짧은 소설에 큰 충격을 받기도 하고 영감을 얻은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소설에 드러난 철학적 사유들은 그 당시가 17세기였지만 이미 그 시기를 뛰어 넘어 19세기와 그 이후의 회화까지 널리 바라본 것이다. 


신념, 예술에는 신념이 필요하지. 이와 같은 창조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오랫동안 작품과 함께 살아야만 하네. 이 몇 개의 음영들을 위해서도 나는 많은 작업을 해야 했지. 자, 여기 뺨 위와 눈 아래 사이에 엷고 희미한 빛이 있네. 자네들이 이것을 자연에서 관찰하면 거의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걸세. 내가 이 효과를 재생하기 위해 믿을 수 없는 고통을 치루었을 거라 생각되지 않나?"

-<미지의 걸작> 128p


푸생이 질레트의 얘기를 듣고 있는 동안 프렌호퍼는 그의 '카트린'을 녹색 서지천으로 다시 덮었다. 마치 교활한 강도들이 곁에 있다고 믿으면서 서랍을 닫는 보석 사아인처럼, 신중하고 침착한 태도였다. 그는 두 화가에게 경멸과 의심으로 가득 찬 몹시 음험한 시선을 던졌다. 그는 발작적이고 민첩한 동작으로 그들을 아틀리에의 문 쪽으로 조용히 데려갔다.

-<미지의 걸작> 132p


나는 미술사, 회화의 이론을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의 세계는 더더욱 나에겐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림에서 드러나는 선과 색채만을 바라보는 이들과 그 안의 '신념'과 '감정'을 발견하는 시선의 다름에서 많은 것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술을 논하는 많은 대화에서 이미 그 이론을 넘어서 시같이도 느껴져서 넋을 놓고 영화를 보듯 소설을 읽어 나갔다. 좋은 글을 찾아 줄을 그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숨을 잠시 참기도 하고 손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면서 눈이 글을 따라갔다.


다시 읽고싶고, 읽게 될 책을 또 발견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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