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아 /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당신의 마음속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는 이로부터."
다른 사람들은 주인공 여공의 아픈 회상에 귀 기울일 때, 한 사람은 소설 속 주변 인물인 오빠의 쓸쓸한 뒷모습에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에 실린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빛깔과 무게가 다를 뿐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상처를 지닌 한 인간'으로 사람을 보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미워할 수가 없다. 심리치료는 기본적으로 자기 상처를 씻는 과정이지만 그전에 남의 상처를 이해하는 일이다. 타인의 아픔을 내 것처럼 아프게 느낄 때 비로소 내 상처도 아물기 시작한다. 또 그런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김영아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50p
작은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수시로 나는 책장의 위치와 책의 위치를 바꾸길 여러 차례 반복했다. 물론 책들도 정리하고 보관 서비스에 보내기도 하며 책들 간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곤 했다. 그리고 두꺼운 고전이 아니어도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내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 두기 싫어하는 책이 늘 있었다. 이 책이 그중 한 권이었다.
아이를 낳고,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레 나의 시선은 '다시' 책으로 향했다. 서울로 올라와 텃세를 참아내며 회사 생활을 할 당시에는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존재를 까마득하게 잊은 듯했다. 그런데 이제는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생겼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는 존재가 생겼다. 늘 울타리가 든든하게 날 지켜주었는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다. 그런 내가 의지할 곳은 책밖에 없었다. 그때 만난 책이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였다. 스스로가 아픈 영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이상하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 당시 책을 읽고 들었던 생각은, 나도 이 작가님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고 책이 사람들 감정에 파동을 만들어낼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희망을 발견했다. 아이가 자라면서도 수없이 마주할 시련을 책에 의지하며 버텨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책을 향한 집착이 시작된 것 같다. 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고, 독서심리 관련 일을 검색하기 시작하였다. 무엇이든 시작하고 싶었다. 어떤 전문 지식이 없었던 나로서는 이것이 유일하게 내가 매달릴 수 있는 것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리 분야는 전문 학과와 대학원 등을 나오지 않으면 힘든 세계라는 것을 익히 들어왔다. 그래서 그저 그 언저리, 책으로 통할 수 있는 세계를 찾으려 참 많이 헤매었다. 그리고 책으로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지금에 이르렀다.
그 시간들을 지나 몇 년 만에 이 책을 다시 펼쳤다. 책은 변하지 않았는데, 책을 읽는 내가 변하였다. 나는 읽다가 목이 매이기도 했고, 당시에 낯설어했던 그 감정들을 헤아려보려 노력하기도 했다.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봤던 30대 초반의 나는 그 안으로 감정을 느끼려 하는 어설픈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30대 후반의 내가 되었다. 무난하게 살아왔다고 하지만 나에게도 말 못 할 고민들이 있었고 상처들이 있었다. 큰 회오리에 갇히지 않았지만 태풍이 내 감정을 휩쓸고 여러 번 지나갔다. 쌉싸름한 그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 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이제껏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피하던 많은 것들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김영아 교수님은 이 책에서 함께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하며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려 했다. 그 상처들은 모습만 약간씩 달랐을 뿐 우리가 지나쳐 온 많은 과거들 속의 우리들이 받아 왔던 상처들과도 그 흐름을 같이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이들처럼 공감하고 위로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 그들의 다정한 위로에 함께 동참하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책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하나의 직업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방향은 많은 사람들만큼이나 모두 다르다. 모두 다른 모습과 결과를 보일 거지만 '돈'이나 '책'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더 강하게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