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경 에세이 <나의 질문>
유독 내가 약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늘 '질문'에서 걸려왔던 것을 모른척할 수가 없다.
질문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시험대에 오른 생각을 갖게 하였다.
내가 질문을 하는 것 역시 누군가에게 눈썹에 힘을 주고 입을 다물게 하는 그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늘 우려하는 것도 그런 나의 성향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질문>이라는 이 책에 왜 이상하리만치 끌렸을까.
보통은 책의 앞에 자리하는 저자의 프로필이 책의 제일 뒷장, 책에 대한 출판사의 도움이 이뤄진 내용이 나오는 그 옆에 자리해 있었다. '재미 저널리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또다시 나의 시선이 얼마나 좁았는지 까발려지는 순간이다. 처음 들어보는 이의 이름이다.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 가서 아이를 낳고 이방인으로 지내다가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내며 세계의 지성들을 만나왔다. 이름으로도 이미 그들의 가치를 보여주는 놈 촘스키, 재러드 다이아몬드, 장 지글러, 스티븐 핑커, 지그문트 바우만, 리베카 솔닛 등. 그녀가 끝내 인터뷰하지 못했으나 마지막 에세이를 냈던 올리브 색스의 이름까지 그녀의 삶을 채웠다.
미국이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취약한 이들의 다양한 사정이 하나하나 다가온다. 글을 쓰며, 내 안에 남겨졌던 잔상과 멍울을 퍼 올려 다독이는 사이 알아차린 세상의 힘과 관계의 밀도 속에서 마음의 터가 조금 다져졌나 보다.
잔뿌리에서 굵어지고 길어진 뿌리의 성장을 느낀다. 이방인이라 여기며 산 곳에 뿌리내릴 수 있다면, 어떤 곳에서든 가능하지 않을까. 한국도 미국도 딱 꼬집어 내 집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처지라 '이제 고향을 잃었구나'하고 낙담했는데, 지금이야말로 지구별을 고향 삼아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 바오바브나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안희경 <나의 질문> 93~94p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이방인이라 자신을 일컫는 그녀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힘과 관계의 밀도 속에서 마음의 터가 조금 다져졌나 보다."라며 어떤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도 자신이 이 삶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친다. 인터뷰를 위해 수없이 메일을 보내거나, 편지를 보내고 거절을 받을지라도 절망하지 않는다. "내 인터뷰는 마땅히 이렇게 해야지!"(<나의 질문> 114p)라고 큰 소리로 말하게 한 그녀의 힘은 그녀의 진심에 있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삶과 삶의 만남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질문에는 '진심'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그 진심을 담고 진심에 답하기 위해 그녀는 그들의 이야기를 수많은 이들에게 다시 들려준다. 자신의 진심을 한 번 더 꾹꾹 눌러 담아서. 인터뷰를 하며 어쩌면 희망을 발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수많은 난제들을 뚫고 그녀가 발견하고 싶어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레 방아의 홈에 물이 차 바퀴가 돌아가듯 모든 거대한 변화는 변화를 갈망하는 집단의 기운이 차오를 때 변곡점을 만든다. 역사의 물결도 꾸준히 변화를 모색해온 지류의 정화 작용이 강으로 흘러들어 그 강물의 성질을 바꿔왔다. 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이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경제 정책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도 반세기 동안 무던히 애써온 수많은 풀뿌리 운동가들과 개인들의 모색이 있었다. 오늘도 전환 마을 토트네스와 지속 가능한 경제법 센터, 그리고 한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전환을 모색하는 집단들은 이웃과 함께 공존하는 장을 열고 있다. 변화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동은 내일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만든다.
안희경 <나의 질문> 186p
그녀의 질문이 다시 나의 질문으로 번져 나오는 느낌, 우리들에게로 다시 번져 나오는 느낌으로 책을 덮었다.
내가 더 옮기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다시 나를 이 책으로 들어가게 만들 거란 생각도 함께 하면서.
'질문'은 이런 것이어야 하는구나. '질문'이 어떻게 삶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 이제서야 조금 느낄 수 있겠네.
이런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하였다.
동시에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만난 것은 책을 읽은 독자만이 만날 수 있는 보물 같은 순간이라는 것을 한 번 더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