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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May 03. 2021

크눌프

헤르만 헤세 / 이노은 옮김


방랑 시인같은 헤르만 헤세의 책은 아직 어느 한 권도 쉽게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덮고 나서 잔향이 오래 남는 책들을 적은 그라고 표현하면 적절할지 모르겠다.

그의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싯타르타> 였는데, 그 이후로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에서도 붓다의 삶을 그려낸 것을 보았다. 그 두 가지가 이상하리만치 자주 겹쳐 보이곤 했다. 붓다가 '깨달은 자'를 의미한다는 것은 사실 그의 책에서 더 확실히 인지한 사실이었고 서양인이 동양 문화를 이렇게 상세히 그려낸 것이 그 당시로서는 아주 낯설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낯섦을 만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고, 그가 적은 많은 글들이 그를 계속 생각나게 하였다.


크눌프는 한 방랑하는 나그네와도 같은 남자의 이야기다. 너무나 자유롭고, 명민하고, 많은 이들이 호감을 갖고 대하는 그의 이야기와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질투와 동경의 감정이 섞인 모습을 그려냈다. 크눌프가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한들 그를 바라보는 이들은 그를 따라 나서지 못하는 몸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위로받고, 외로운 소녀는 닫혔던 마음이 열리어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크눌프를 흔쾌히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것은 그의 사람들을 향한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와 친구들의 대화도 인상적이었지만 그가 죽어가기 전에 신과 나누는 대화는 더 깊이 그리고 오래 생각에 남게 한다. 


한탄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모든 일이 선하고 바르게 이루어져 왔고 그 어떤 것도 다르게 되어서는 안 되었다는 것을 정말 모르겠니? 그래, 넌 지금 신사가 되거나 기술자가 되어 아내와 아이를 갖고 저녁에는 주간지를 읽고 싶은 거냐? 넌 금세 다시 도망쳐 나와 숲속의 여우들 곁에서 새 덫을 놓거나 도마뱀을 길들이고 있지 않을까?

- 헤르만 헤세 <크눌프> 134p


내가 바라오던 나의 '미래'의 모습에서 나의 '지금'은 늘 비켜간 모습이었다. 마치 무소유에 가까운 가치를 말하는 많은 이들처럼 내가 가지지 못했던 또 다른 나에게 조금은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충분하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어찌 사람의 마음이 그리 쉽게 잡히겠나하면 그렇지가 않은 게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여전히 또 다른 희망사항들을 이야기하고 더 나은 모습을 꿈꾸고 마는 거란 말이다. 


나는 거꾸로 생각해본다. 내가 이미 나의 이상향에 도달한 사람이 되었다면 나는 만족한 삶을 살고 있을까.


길지 않아도, 내 생각의 길이가 길어지게 하는 책이 이런 책이다.

너무 길어진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기도 힘들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끊어낼 수도 없게 하는 책.


나는, 지금 어떤 '나'를 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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