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보다 더 오래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둘째 생각이 없어지고 난 후에는, 반려 동물을 키우는 것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는 주변의 만류하는 말들에 가장 깊게 박히는 것은 다시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거라는 말이었다.
다시 신생아 아가를 키우는 것처럼 우리 가족과의 삶 안에 강아지를 들이는 것은 많은 것을 서로 맞춰가기 시작하는 것이고 내가 겨우 얻은 조금의 자유로운 시간이 다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동시에 어린 시절 키우던 강아지들이 떠올랐다. 가장 오래 키운 강아지는 조그만 요크셔테리어였고 그 당시 병원에서 분양받은 것도 아니었고 우연히 데리고 와 키우게 되었는데 학교에서 하교하면 강아지가 나를 맞아주곤 했다. 열렬한 환대. 무조건적인 애정. 작은 온 몸으로 그것을 보여주었다. 절대 침대에 올라오게 하지 말라고 했어도 결국 엄마 눈치를 보며 내 침대에 올라오게 하곤 강아지는 내 팔에 얼굴을 대고 잠이 들곤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나는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강아지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즈음엔 이모집에 맡겨져서 이모집 갈 날만 기다리기도 했었다. 이모집을 다시 가면 이모는 우리가 가고 그 아이가 한참을 문 앞에서 우리가 오길 기다렸다고 했었다. 늙어 눈이 보이지 않아도 냄새로 나에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곤 했다. 서울로 올라와 직장 생활을 하며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전화기 너머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전해 들었다. 그날 밤이 얼마나 외롭고 슬펐는지 모른다.
강아지를 키우려고 생각하니 그 여리고 작았던 몸의 존재가 떠올랐고, 다시 다가 올 이별을 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딸이 마주할 슬픔을 견딜 수 있을까도 걱정이었지만 나부터도 걱정이 되었기 때문일 거다.
그러다가 만난 한 강아지의 사진에 갑자기 앞뒤 재며 생각할 이유가 사라졌다. 하얀 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작지 않은 몸집의 강아지였다. 까만 코와 새까만 눈동자만 털에 뒤덮인 채 사진을 찍는 주인을 응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이 찌르르 전해져 왔다. 이 아이와 살아야겠다. 이 아이를 안아주고 싶다. 하지만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또 한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혼자 결정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신랑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다던 신랑이 너무나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월차를 냈으니 내일 내려가자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결정을 한 후, 내려가면서 아이는 내내 싱글벙글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걱정 반 설렘 반의 감정이었다. 그리고 도착!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는 강아지를 만났고 1시간가량의 대화 끝에, 목줄을 하고 함께 그 집을 나섰다. '이제, 가족이다.' 나는 내내 이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리고 벌써, 5개월을 넘어서서 반 년이 되어가고 있다. 오랜만에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라 애견 용품을 고르는 것에서부터 미용 샾까지 다녀오는 것, 아이가 혼자 있는 것에도 적응을 시키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누가 뭐라고 정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우리 부부가 이 조그만 아이를 부르는 호칭은 '배단(원래 이름은 단, 신랑의 성을 앞에 붙여서)', '막내딸'로 굳혀졌다. 우리 가족은 무한한 환대를 만났고, 무조건적인 애정을 다시 받고 있다. 이제 식구 세 명이 편히 주말 나들이를 하던 시간은 그게 언제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매일 산책은 필수 코스가 되어버린 지 수개월 째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더 많이 웃고, 더 자주 함께 거실에 오손도손 모여 앉아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정말, '우리는 가족이다.'
언젠가 이 아이를 만나던 순간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처음 데리고 김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끙끙 소리도 한 번 내지 않던 단이는 이제 어디론가 외출을 하러 차를 타면 아빠에게 가고 싶다고 끙끙대고 나름의 말대꾸도 한다. 안 된다고 억지로 잡고 있으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 아이에게도 우리는 이제 가족이다 싶은, 그래서 행복한 의사표현이 아니고 무엇일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별의 순간이 온다고 해도, 마음 다해서 사랑을 주리라고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고 사랑해라고 말하며 안아줄 때마다 생각한다. 사실, 누구보다도 내가 훨씬 더 이 작은 존재에게 위로받는지도 모른다고 인정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