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예찬

by 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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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태양 시계 위에 던져 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나날을 베풀어 주소서,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홰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감미로움이 깃들이게 해 주소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 가을날- 중에서.

(시집 <열두 개의 달 시화집 가을>)



아침에 잠에서 깨어 부스스한 모습으로 침대에서 빠져나올 때 느껴지는 새벽의 공기에서 가을을 먼저 만나곤 한다. 얼마나 기다렸던 가을이었는지 모른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여름의 끝무렵에 조바심 나는 마음은 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이제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작년 이맘때쯤엔 조금 긴 옷을 찾아 입기 시작하지 않았나? 작년 추석 때는 긴 겉옷을 꼭 챙겨 입고 가지 않았었나? 처음 서울에서 지낼 때는 열차로 꼭 내려가곤 했는데 긴 겉옷을 부산에 도착하면 벗고는 역시 따뜻하다고 웃지 않았던가? 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데고 데어서 이제 더 탈 곳도 없겠다고 웃으며 말했던 여름은 어디로 갔을까? 시원한 물줄기와 그늘을 찾아다녔던 여름은 또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렇게나 다르게 느껴진 여름은, 그래도 정말 안녕을 말하고 가을과 자리를 바꾸었다. 차가워진 집안의 공기와 건조해진 바람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꼭 땅에 떨어진 낙엽 무더기를 발로 밟아 으스러지며 내는 소리와 느낌을 가지던 어린아이도 이제는 서둘러 학교를 가는 조금은 자란 소녀가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낙엽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이제는 예쁜 낙엽을 고이 안고 집까지 오는 소녀가 되었다.) 내리는 빗소리에 또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겠구나 싶으면서, 조금 더 시원해진 공기로 가을이라는 날들이 채워지겠구나 라며 생각한다.


가을에 나는 밤도 좋아하고, 유난히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날들도 좋아하고, 산에 떨어진 도토리를 다람쥐들이 주워 먹고 남겨놓은 도토리 껍질(딸이랑 나는 도토리 모자라고 부르곤 하는)도 좋아한다. 가을바람이 봄바람보다 더 위험한 거 아니냐며 웃기도 한다. 봄의 들뜸과 여름의 뜨거움을 지나 가을의 고요함은 다른 계절보다 더욱 나를 홀로 있고 싶어지게 한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가을 때쯤엔 홀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해왔다.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바람이지만 곧 그리 될 수 있겠지 생각하며 책을 한 장 두 장 넘긴다.


그래, 책이 있었지.

겨울 예찬론자였다고 믿고 있던 나는 가을도 사랑했었네.

책의 한 장 두 장 넘기다가 갑자기 시를 읽게 되네. 나, 그러고 보니 시도 좋아하나 보다.


혼자 이런저런 상념에도 젖어들었다가 피식 웃음도 지었다가 다시 책에 집중한다.


그리고 나는 옛날의 시인을 읽는다네. 그러면 마치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네. 나는 그토록 많은 것을 견디어내야 하네! 아, 이 세상에 일찍이 나보다 더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이 있는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괴테 그대도 나에겐 옛날 사람이에요. 그대가 보여준 고통에 함께 마음을 붙잡는 이들이 있어요. 그대도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내지 않았나요? 하며 작가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는 지경에 이른다.


목적을 위해, 필요를 위해 읽다가 책에 완전히 몰입된 순간 그 목적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한다. 그 순간을 자주 만나고 싶어서 자처하는 나의 읽는 행위들을 가을을 예찬하는 마음처럼 찬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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