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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07. 2019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은.

이제, 어디든 이 세 가지면 충분해.


책. 다이어리와 노트. 연필


오랜만에 찾아간 분위기만으로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리게 하던 카페가 굳게 문을 닫은 상태였다.

유리문으로 들여다본 안의 공간은 처참하게만 느껴졌다. 몇 개 남아있지 않은 테이블과 어지러이 놓인 택배 박스와 공구들, 의자들. 하나의 소품에서도 공들여서 놓은 손길이 느껴져서 좋았었는데 내가 잘못 본 건 아닌가 싶었다.


비가 오니 급히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기고, 책을 펼치고 어안이 벙벙해져서 잠시 끄적거린다.

카페의 주인은, 보수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해결이 되지 않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멈추고 시작하고, 다시 또 다른 무언가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그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어떤 마음에서였을까?

호기롭게 시작한 모습과 갑작스레 사라진 그 시작의 두근거림과 두근거림을 대체한 상실감의 간격이 느껴진다.


일을 시작하고,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일들과 시선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건넬 수 있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확신보다는 흔들림의 감정이 앞서고 만다.


나, 여기 있어요. 나의 진심을 봐주세요.

책에서 왜 꼭 뭔가를 이끌어내야 하고, 변화해야만 하나요?

지금의 당신을 바라보세요. 흔들리고 고뇌하는 당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나요?


소리쳐 시선을 잡아끌고 싶으면서도 책 뒤로 가서 숨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 드는 것이다.


거기다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닌가.


아이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아이의 마음만은 조금이라도 덜 생채기를 당하게 하고 싶고

상처 받지 않는 삶은 없다지만 그 상처를 줄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떠란 말인가.


나도 이런데 아이는 또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수시로 쏟아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딸은, 엄마가 제일 좋다며 엄마의 목에 매달리며, 작은 엄마의 품에 파고든다.

유치원에서 적었다며 얼른 가방에서 꺼내와서 보여주는 '엄마'라는 글자와 그림, 하트와 별 그림들.

내가 이 아이에게만은 어떤 존재일지, 내가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싶을 때가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티격태격하고야 말고,

아이를 재울 때가 되면 '토닥'거리면서 나도 조금 마음을 내려놓는다.


예쁜 내 딸. 참 예쁘다.


이러면서, 딸에 대한 감정을 또 종이에 흩트려놓는다. 한결 나아진다.



내 마음은 어떤 날은 물웅덩이.

어떤 날은 얼룩.

어떤 날은 먹구름이 끼고

세찬 비가 쏟아져 내려요.


내 마음은

어떤 날은 아주 작고 여린 싹.

하지만 그 작은 것은

점점 더 크게 자라고

또 자라고...

자랄 수 있지요.

.

.

.

<내 마음은> 코리나 루켄 지음 / 김세실 옮김 / 나는 별 출판사


그림책의 그림과 글을 여러 번 넘겨보고 또 넘겨보았다.

내 마음이 그렇다고. 서현이도 이런 마음이겠지.

채원경 <다가가는 마음>

결국은 내 마음을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또 나의 존재감을 여전히 아이에게서 찾고.

엄마이지만 우연주. 우연주는 엄마... 이런 도돌이표같이 낱말만 나열될 뿐이다.

그래서 결국은?


지금 내 마음은

이 시간은 그 자체로 흘러가게 두는 것이 현명한 것 같다고.

조금은 흘려버리는 건 결국 종이 위에 끄적거려 보는 것이라고.


"인생의 어떤 일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기도 하지만 어떤 일은 지나가도록 만들어야 하고,

또한 그 시간을 견뎌내는 동안, 소중한 나의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

-안송이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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