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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10. 2019

유독 그런 날

횡설수설. 엄마의 유랑생각 


유독 그런 날이 있다.

글을 읽어도 글은 까만색이오 종이는 하얀색이오 하는 심정으로 

한 페이지를 넘기고 다시 읽는다 해도 또 새로 읽는 기분이 드는 날.


시원한 공기가 너무나 차갑게 느껴져서 때 이르게 두꺼운 니트 옷을 입게 되는 날.

그러고도 몸을 부르르 떨고 몸을 움츠린다.


기운이 바닥이어서 30분만 자고 일어나자며 누웠다가

어느새 1시간을 가득 채우고서야 몸을 무겁게 일으키게 되는 날.


조바심이 최고치에 달하는 날.


아무것도 나의 흔적과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은 날.


그래도 오늘의 떠다니는 생각도 잡아보자며 타닥소리를 내며 키보드에 생각을 내맡긴다.



겨우, 책을 몇 페이지 읽어나가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생각을 툭툭 던지는 문장을 발견하면

오호라! 하며 표시를 하곤 하는데 이번엔 직접 종이 위에 새겨본다.


날카로운 듯하면서 담담하게 그렇지만 너무 냉정하지도 않게.





서현이가 잠들고 몸의 피로함을 이유로 내세워 조금은 기운 없이, 짜증도 내었던 엄마였으니

또 반성의 마음으로. 가만히 손을 놀려본다.


내가 너무 나태해졌나? 너무 고리가 풀어졌나?

텅텅 비어버린 시간의 구멍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나 흔하게, 100일 넘는 날동안 계속되어 오던 미라클 모닝이,

흐지부지 되어가든 순간에 들었던 의외로 담담했던 감정은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었다.

미라클 모닝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 이외에 틈이 생겨버린 걸 채워내고 싶어 졌다.

그 빈 곳을 왜 그리도 채우려 했을까?


아이와 지내는 시간이 사실은 나 홀로 지내는 시간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데도, 

그 시간의 틈을 허용할 수 없었네. 참 욕심도 많았다.




아이가 주말에 작은 은행잎을 주웠다.

노랗게, 철 모르게 빨리도 색이 바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말까지는 적어도 따뜻했으니깐)

뭐가 그리 조급했던 거냐며 얇디얇은 나뭇잎에 묻고 싶었다.


아이가 소중히 대하기에, 나의 두꺼운 책에 고이 끼워와서는 

아이의 자투리 그림이나 글들을 모아두는 노트에 붙여두었다.

유치원에서 다녀온 아이는 금세 눈이 동그래지고 반짝거린다.


아이의 하루하루를, 나의 하루하루를 이렇게 작게 채워나가면 되는 것인데

너무 많이 생각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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