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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11. 2019

소풍

딸도 엄마도 소풍 가다


소풍

         

1.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는 일.  
2. < 교육> 학교에서, 자연 관찰이나 역사 유적 따위의 견학을 겸하여 야외로 갔다 오는 일.  


소풍 하다


1.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다.  

2. < 교육> 학교에서, 자연 관찰이나 역사 유적 따위의 견학을 겸하여 야외로 갔다 오다.  




야속한 태풍 때문에 일주일이나 뒤로 딸의 유치원 소풍날이 미뤄졌었다. 직접 달력에 동그라미로 표시를 하고 몇 밤이 남았는지 매일 세어보던 딸. 드디어 기다리던 그 날이 왔네.


김밥보다 유부초밥을 좋아하는 딸이어서 조금 수월한 도시락 준비. 

원래도 일찍 깨던 딸, 오늘은 유독 신난 감정 그대로 깨서는 나를 향해 애교를 부린다.


그래, 엄마는 너의 애교에 사르르 녹으니깐.


벌떡 일어나서 도시락 준비를 하고, 입고 갈 옷도 준비하고.

유부초밥을 만드는 내 곁으로 받침대를 끌고 와서는 종알종알거리는데 목소리가 아주 춤을 춘다. 날아가겠다.


유치원 가는 길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걸음이 가벼우니 나도 딸을 보며 내내 웃음이 난다.





소풍만 하면, 천상병 시인님의 시가 떠오르네.

소풍이 좋은 추억들로 남기는 이야기들인거겠지. 삶 다하고 떠날때 좋은 추억들만 기억에 남으면 좋겠네.

정말 소풍을 나온 것 처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챙겨서 신나게 소풍을 갔던 날


바다를 자주 볼 수 있다지만 그것보다 더 자주 볼 수 있는 건, 동네를 둘러싼 산들이었지.

(어떤 날은 산이 꼭 병풍처럼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학교 바로 뒤에도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산으로 이어지니, 소풍도 산으로 갔더랬다.

몸집이 작았던 나를 앞에서 손 잡아주고 뒤에서도 속도를 내지 못해도 재촉하지 않던 친구들 덕분에,

키가 작아서 불편함이 있었던 기억보다 오히려 보호를 받았던 느낌이 강했었다.

넓고 평평한 구릉지대가 나오면 맘껏 뛰어놀고 도시락 먹으면서 그 자유를 만끽했었지.


그냥 파노라마 여상 보는 것처럼 이어지는 그 시절이 그립긴 한가보다.


소풍만 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 하나.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산길을 내려오면서 옷이 나뭇가지에 걸려 벗겨졌었지.

다시 가지러 갈 용기도 안 나고, 옷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들 틈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

아마 어린 나이였던 것 같은데,

그날 오후였는지 그다음 날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을 맡으셨던 선생님이 옷을 가지고 내려와서 

그 옷은 무사히 다시 내 품에 들어오게 되었었다.

여전히 우리 집에서는 잊지 못할 해프닝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때부터 덜렁대던 아이는, 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하긴 하지만, 그건 언젠가 다시 이야기하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만으로도 피식거리는 해프닝이 떠오르고, 아련히 떠오르는 노스탤지어.


언젠가 내 아이도 소풍을 떠올릴 때 아스라이 떠오르는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지겠지.





아이가 소풍을 떠나고 돌아오기 2시간 전.


나도 잠시 소풍을. 그래 봤자 바로 근처의 카페로 필름 카메라와 노트, 책을 들고 나설 뿐이지만.

그레도 그게 어디야? 나에게는 휴식을 취하는 이 시간들이 내 많은 날들의 소풍날이지.


마침 가져온 책은 룽잉타이의 <아이야, 천천히 오렴>



예쁘장한 아이의 머리를 가만히 쳐다보던 엄마의 가슴속에서 무한한 경외심과 감동이 솟구쳐 오른다.
아이야말로 천심(天心)의 증거이자 증거이자 아름다움의 극치일 것이다.
도대체 어떤 우주의 조화가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탄생시킨 것일까?
<아이야, 천천히 오렴> 33p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고 버스의 끄지 못한 시동소리, 엄마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도 아름다움의 극치, 내 아이를 만나러 가야겠다.

내 아이가 말해주는 소풍 이야기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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