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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13. 2019

<아이야, 천천히 오렴>

룽잉타이 - 양철북



그때, 화안이 가만가만 소파 위로 기어올라오더니 엄마 몸 위로 완전히 포개지며 안겨 왔다. 아이는 엄마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는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듯 가만히 엄마의 심장 박동과 따스한 온기를 느꼈다. 

엄마는 두 팔로 화안을 감싸 안고 턱으로 아이의 정수리를 가볍게 문지르며,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엄마가 입을 열었다.

"아니, 그렇지는 않아." 그리고 다시 침묵.

"어떤 경험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거든..."

<아가야, 천천히 오렴> 54p




중국의, 타이완을 대표하는 작가 룽잉타이의 에세이 중 1권.

그녀와 어린 아들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다.


육아 에세이는 잘 읽지 않던 내가, 무엇에 이끌린 것인지

저 표지의 활짝 웃지 않지만 자신의 세계에 집중한 아이에게 끌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남자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많은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지만 담담해서 더 그 감정을 조금 알겠다는 생각에

몰입하면서 읽어 나갔다.


아이가 처음으로 단어를 말하던 날

학교를 다니게 되기 전 유치원을 가서 친구들도 모두 없는 모습을 보던 날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홀로 오는 긴 시간과

늘 뭔가를 들고 오던 날들.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던 날들

혼혈을 바라보던 중국인들의 시선들

동생과 노는 모습들과 잘못을 해서 벌을 주던 날들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많은 꿈을 잠시 접어두었던 것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가 자신의 품에 안길 때

아이의 체온을 느끼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행복을 만끽하던 엄마의 모습



바로 어제 올린 글처럼, 이 책 덕분에 나는 아이의 7살 엄마의 7살을

 온전히 기쁨으로 느끼게 된 것 같다.


끊임없이 노는 와중에도 나를 바라보며

보조개가 흠뻑 파일 정도로 밝게 웃는 아이

모래를 잔뜩 모아서 나뭇가지를 세우고는,

자신이 만들었다며 얼른 내 손을 끌고 가서 보여주는 아이

낯선 오빠들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에도 꺄르륵 웃으면서

리액션 좋은 관객이 되어주는 아이.

종이를 여러 겹 접어 붙여서 책 만들었다며 자신 있게 보여주는 아이


내 아이도 내 품에 그렇게나 파고드는데,

책 속 한 구절에서, 엄마의 모습과 아이의 모습에서

나와 내 아이를 발견하고 만다.



물론 그래도, 따스하고 달콤했던 기억들이 가장 많다. 그 기억들은 지금도 또렷하다.

(...)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 수많은 기억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간다. 나와 동생 그리고 나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이 두 사람을 내 '가족'이라기보다, 오히려 내 진실한 벗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 앞에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어린 시절 화페이와 밤낮으로 부대끼며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엄마가 바로 내 우주의 중심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평범한 오후, 숙제를 마치면 -혹은 내가 숙제를 마친 척 한 뒤에-우리 둘은 엄마의 서재를 맴돌았다. 매번 동생과 내가 서재에서 기상천외한 일을 꾸미면 엄마는 책상에서 고개를 들고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얘들아, 책 좀 보는 게 어때?"


<아이야, 천천히 오렴> 후기, 안드레아의 글


아이들은 훨씬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엄마는 아이들이 잠 들고나서야 서재에서 글을 쓰는 작가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잠들기 전, 엄마가 책을 읽어주고 서로가 부대끼던 그 순간을 달콤하게 기억한다. 형제는 계속 엄마를 방으로 다시 들어오게 하곤 하였고, 화난 척하는 엄마이지만, 아이들의 곁에 늘 그렇게 중심으로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녀 역시 매를 들기도 하였던 인간적인 엄마였고,

아이의 말을 듣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최선을 다해았었다.

그랬던 엄마였기에 더 많은 애정을 담아 사랑하는 그녀의 아이들이 존재했겠지.


엄마로서 온전히 지낸 그 시간들,

아이들과 대화하고 아이의 말 하나에서 아이의 생각을 읽어내곤 했다.


독일인 아빠와 타이완의 엄마 사이에서의 아이는

어른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하며 지냈고

그걸 발견할 때마다 엄마는 놀라곤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의 엄마로서의 모성애를 발견한 듯했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매번 내가 행동하는 엄마로서의 모습은 부족하게만 보였다.

괜찮다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말하는 많은 이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들의 모습에서 나와 아이의 모습까지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야 아이와 나의 처음들을 날 것 그대로를 바라볼 용기를 가져본다.


아이도 나도 처음이고,

아이도 나도 함께 시간을 지내는 순간들이 있어서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서로가 아직 우주의 중심과도 같은 존재이리라.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훈육을 해야 하고.

어떤 교육을 해야 하고.. 

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고 해도 이제 조금 무거운 짐 같은 의무를 내려놓는다.


엄마들이여, 그대들이 아이의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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