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오후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렀습니다.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기보다는 그저 공부를 하러 잠시 집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수업을 위해 읽는 책이지만, 그 책이 또 읽다 보니 푹 빠져들게 되기도 합니다.
박태원의 장편 소설 <천변풍경>이 그러합니다. 처음에는 다시 어두운 생활상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한 장 두 장 겨우 넘기다가 어느새 문장에 그대로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쉼표로 계속 이어져서 한 문장이 아주 길어요. 좋은 글은 문장을 간결하게 쓰면서 문장의 호응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 스스로도 늘 생각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정말 좋은 글은 모든 법칙을 벗어나도 문체로 승부하는 것이더군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읽을 때 엄청 긴 문장에 놀랐던 것이 기억났는데, 이런 긴 문장이 오히려 지금은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천변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이발소 소년의 시선에서 연결되기도 하였다가 빨래터 아낙네들의 입에서 입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등장인물 본인의 시선에서 그려지기도 합니다. 누가 주인공인지 가리기 이전에, 이미 모든 등장인물에 마음이 가는 것으로 보아 주인공을 가려 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도 싶습니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여야 될 것 같아요. 그 시절을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삶에의 의지를 발견하게 되겠지요.
60p 말은 오직 그 한 마디로, 다음에 무수한 주먹과 또 발길이, 가엾은 여인의 몸 위에 떨어졌다.
107p 평소에 소란하던 빨래터도 지금 당장은 방망이 소리 하나 들리는 일 없이, 십여 명이나 모여 있는 빨래꾼들이, 바로 약속이나 한 듯, 얼마 동안은 입들을 봉하여 애달프게 조용하다.
점룡이 어머니는 문득 눈을 들어, 언제나 다름없이 의도 좋게, '동부인'을 하여 어디로 또 나가는 한약국 집 내외를 보고, 저도 모르게 가만한 한숨을 토하였다.
-박태원 <천변풍경>
저는 여전히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좋습니다. 읽고 있는 책으로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걸요. 책을 읽는 그 고요한 시간이 외로움 대신 충만함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순간을 경험한 책담을 나눌 수 있는 인연이 곁에 있다는 것으로도 얼마나 든든할까요?
오늘 도서관행은 빌린 책의 반납을 위해서였지만 사실 책을 읽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러 가기도 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책의 활자에 집중하거나 글을 쓰거나, 커피를 마시며 잠시 담소를 나누는 이들의 표정은 외부에서 그들의 모습과는 별개로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은 알까요? 책 읽는 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저는 주말에도 여전히 책을 끼고 살겠지요.
우리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안녕히.
202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