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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17. 2019

아줌마,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

여기에도 소중한 사람이 있어요. 여기에도 꿈틀거리는 삶이 있어요. 여기에도 단 한 번뿐인 존재의 반짝임이 있어요.

: 월간 정여울 달그락달그락 중에서



늘 다른 이들의 삶을 선망하며 지내옸다. 작은 키, 지방 대학교 졸업, 어떤 비전도 없이 무턱대고 서울로 취직 후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의 삶이 시작되었고 꿈이 아닌 돈과 시간을 위해 살아왔던 빛났으리라 생각되던 청춘을 지나 결혼을 하였다. 아이가 생기고 내가 그 아이만의 온전한 한 사람이 되고 나서야,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나서야 내 삶이 어떤 모습이었든지 간에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로서 존재하고 그것 자체가 이미 보석 같은 삶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완벽하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는 엄마는 아니라서 저녁만 되면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으로 온몸을 떨기도 하는 그런 엄마. 흔히들 부르는 아줌마로서 매일이 새로운 리셋되는 듯하면서 반복되기도 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어떻게 나는 청춘의 시절보다 나는 더 많은 책을 읽어내고 있고,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써 내려가게 되었을까. (아직 작가의 수준은 아니지만, 매일 쓰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씀의 행위 자체만 생각해주길)


지금 청춘들이 얼마나 빛나는지, 그 존재만으로도 빛나는지 그걸 모르고 엉뚱한 생각으로 자신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걸 보면, 마음이 안쓰러워지기도 하고,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중에 더 깊이 자신을 가치 있는 보물로 만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애써 스스로 위안을 하기도 한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그걸 극복해 온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 대단하고 오를 수 없는 나무를 바라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런 고난을 겪거나 극복한 경험이 없는 내 삶이, 나의 평범한 삶이 너무 사소롭게 느껴지기도 해서. 사실은 이런 평범한 사람은 어쩌라는 거야라며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뵈도 했다. (질투였을지도) 저 혼자 꼭 별나라 행성에 떨어진 사람이 된 것 같이.


그래도,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여기도 평범하지만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잘 살아내려 버티는 사람이 있다고, 대단한 명성을 받지 않아도 그 사람 자체를 바라봐 줄 수 없느냐고 말이다. 


소소하다고 하지만, 그 소소함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희생하기도 하고, 큰 일을 겪든 겪지 않든 그 큰일이 자신의 영웅담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이미 빛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아무리 평범한 삶을 지낸다고 해도 그들이 가진 내면의 아픔들을 드러내지 않아도, 속으로 삭이더라도 그들에겐 이미 지금의 평범함을 만들어내는 힘이 빛나고 있다고. 


누군들 힘들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소리 내어 울고 싶었던 날이 없었겠나.


그런 많은 순간을 이겨내고 지금을 살아내고 있으니, 너무나 가치 있는 자신을 보듬어줄 수 있기를.


그런 마음으로 나의 평범한 생각들, 그냥 써 내려가고 싶어 졌다.

오래 쓰는 이가 되어서 나이가 들어서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피식 웃으면서 생각한다.



평범함도 소중히 여기는 가치라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한 명, 두 명.. 더 생기길 바라면서.


2019.10.17 거실 한 켠에서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가을공기를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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