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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21. 2019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파커 J. 파머 / 글항아리

                                                                                                                                                                                                                                                                                                                                                                                                                                                                                                                     


나이 듦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면 "거짓으로 보낸 젊은 시절"을 넘어 "진실을 향해 시들어"갈 기회가 열린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41p








헤매며 읽던 처음이 지나고, 함연에서 함께 읽으면서


내가 놓쳐왔던 많은 생각들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나의 생각이 향하는 곳으로 모든 오성이 집중되는 느낌이었으니


내가 놓치는 부분이 많았을 수밖에.



나이 듦의 시간 속에서 파커 J. 파머가 바라본 것들은,


나이 듦에서 온 오만과 자만심이 아닌


이해와 너그러움이었고


자기반성과 아직도 그에게는 많은 날이 남았으리라 믿는


(아니 그보다는 시간이라는 개념에서 많은 것을 뛰어넘는)


시간에 대한 초연함도 느껴졌다.









파커 J. 파머의 '가장자리'는 삶을 옥죄이는 헛것들의 무게가 빠져나가서 새로운 시야가 열리는 자유의 자리다. 헛것들은 무게가 많이 나가고, 그 무게로 사람들을 겁준다.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무겁고 무섭지만, 게으른 자들이 억지로 만들어 낸 의문문이라는 혐의가 짙다. 파머는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보다는, 이미 드러나 있는, 그러나 보이지 않았던 의미들에 관하여 말하는데, 그것들은 본래 거기에 있던 것이다.




김훈 소설가의 추천사 중에서








가장자리의 시선과 젊은이와 노인의 이야기, (확실히 젊은이들을 그만의 잣대로 바라보지 않음이 느껴졌다. 나의 멘토, 혹은 누군가의 멘토가 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 장이었다.) 리얼해진다는 것, 일과 소명, 세상에 관여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바깥으로 손을 뻗기, 영혼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안쪽으로 손을 뻗기, 그리고 마지막 가장자리를 넘어까지. 총 7가지로 나누어져 이야기는 이어진다.



파커 J. 파머 본인이 영향을 받은 이에 대한, 그리고 그의 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게 드러내기도 하였고,


혹은 흥분하기도 하였으며 또 가만히 다독여주기도 하면서 책 속의 파커 J. 파머는 나를 잡았다가 흔들었다가 다시 다독거려 주기도 하였다.



사실은 읽어나가면서 깊게 몰입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영혼,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와 세상에 관여하는, 사회적인 문제로 시선을 옮겨갈 수 있게 도우려는 장이 특히 그랬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에게는 새로움의 시선을 많이 안겨줬으니,


지금의 시간이 지나고 5년 혹은 10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본다면 


나의 시선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게 되겠지.










"무엇을 놓고 싶고 무엇에 나를 내어주고 싶은가?"


'붙잡고 싶은' 욕망은 결핍과 공포감에서 온다. '나를 내어주고 싶은' 욕망은 풍요로움과 너그러움에서 온다. 바로 그것을 향해 나는 시들어가고 싶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47p








나의 욕망, 바램들의 이름을 다시 생각해본다.


참 욕심도 많았지만, 그것의 첫 출발점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으니.


내가 배운 것들을 더 깊게 해내려 하기 전에 항상 두려움이 앞섰다.



아직 제대로 피어나기도 전에 어중간해진 나의 지금을 생각해보면


한없이 외롭고 위축되어버리곤 한다. 


내 모습은 왜 그리도 작게 느껴지고,


내 부족한 모습을 채우려고 더 이것저것 많은 것을 시도해보려는 감정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서 완벽히 존재"


저 높은 천국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라. 그러면 즉각 보상받게 될 것이다. 사랑의 공동체는 우리 가운데 있다. 제대로 이해했을 떼죽음을 "매일 눈앞에서" 둔다는 것은 자기 삶을 외면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자신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려면, 삶의 여러 사건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자신이 어떤 존재였고 무엇을 했는지를 진정으로 소유하면 (...) 현실을 치열하게 대하게 된다.




플로리다 스콧 맥스웰








다른 이의 삶과 여러 모습들을 동경하기란 참 쉬웠다.


그들이 가진 것들이 나에겐 없는 것들 투성이였으니깐.


그들과 다르게 나도 채워지고 싶었지만 막막하게만 느껴지곤 했다.



 여러 물건들로 욕구를 해소하기도 해왔지만,


나의 속내들을 어딘가에 적어내려가는 것도 사실은 어려웠고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긴 불가능했다.



나는 무엇에 매달려왔던 것일까?



조금씩은 내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를 뒤늦게 내보려 하고 있고


한 권을 채우지 못한 수많은 노트들을 다시 꺼내어 채워진 부분의 이야기를 옮기면서


버려짐과 내 이야기들과의 헤어짐을 막으려 해본다. 



내가 온전하게 나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나 깊이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다시 모든 것과 만나리라.


내 삶이, 내 지금 시간들이 또 조금 흘러가서.



그곳이 가장자리에서이든 아니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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