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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Apr 25. 2020

지금 이곳. 힘을 모을 수 있을까

라문숙 - 깊이에 눈뜨는 시간


나는 종일 나였다가 또는 나인 척했다가를 왕복하느라 지친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슬라이드가 한 장씩 넘어가는 것처럼 내가 바뀐다. 


오래된 살림과 오래된 시선과 오래된 믿음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무엇도 아닌 


그저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두어 시간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은 바로 문을 열고 닫는 일이다.


라문숙 <깊이에 눈뜨는 시간>




다시 읽은 <깊이에 눈뜨는 시간>은 

다시 또 나의 모든 시간들과 내가 지나오면서 거쳐온 내 생각들을 돌이켜보게 합니다. 

마지막 3번째 큰 이야기는 '좋아하는 곳에서 힘을 모으는 시간'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곳이, 늘 집 밖을 향해 있었습니다. 물론 회귀본능은 너무나도 강해서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너무나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하더라도 금방 또 집으로 돌아가려 하고 몸도 마음도 갑자기 지치기도 하지만 내가 모든 나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집안 어디에서도 내가 나일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으니깐요. 


그런데 작가님은, 겨우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보이는 대문도 나가지 않는 마당이 그곳이라고 합니다.

휘청거리는 심정으로, 모든 것에 지쳐도 일단 문을 열고 나서면 그 공간의 공기는 달라져 있는 걸 느끼는 것이겠죠.


그 공간이 어디일까. 저에겐 그런 공간이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디를 둘러봐도 아이의 흔적, 가정의 의무를 벗어던질 수 없는 많은 흔적들이 있더군요. 도저히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힘든 거야. 생각했죠.


아이와 24시간 함께하는 이 공간에서, 위안 받고 싶었고 저 홀로 있고 싶은 시간이 존재하는 걸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주방 한 켠 트인 방을 조금씩 제 책을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식탁으로 쓰이던 정말 '식탁'은 제 책상이 되어버렸고 제가 사랑하는 노트와 책들은 의자에 앉아 어디를 둘러보아도 존재하게 두었습니다. 이사 올 때부터 이 공간은 막힌 방이 아니라 폴딩도어로 열고 닫으며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폴딩도어를 닫아도 유리 너머로 주방이 보이지만 어느 정도의 시끄러움을 조금이나마 줄여줍니다. 공간이 환히 보이지만 유리 너머로 보이는 것이 마치 멀리 있는 세계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서 일부러 문을 닫아두기도 합니다. 특히 저녁 늦은 시간이나 이른 새벽은 말이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는 아이와 함께 앉아서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저는 책을 펼쳐두고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음이 바쁘기도 합니다.

아이가 앉는 공간 바로 옆엔 아이의 책이나 연필들을 놓아두어서 

아이는 이 공간이 자신의 공간으로 여기고 있을 테지요.

(아직 아이의 방이 없답니다.) 


이 공간이 저에겐 마음이 푸를 때도 있고 꽃 피는 날처럼 두근거리는 문장을 읽은 날엔 봄날같이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하고 저의 한계를 느낄 때는 한없이 소심해지고 몸이 움츠러드는 겨울처럼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방을 뒤로하고 마당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고 답답한 숨통을 틔우기 위한 것인 동시에, '지금 이곳에 있는' 내가 '나로 있고 싶은 곳'으로 건너가는 일이기도 하다." (라문숙, 깊이에 눈뜨는 시간 194p) 


이 말처럼 이 공간이 어떤 계절로 저에게 느껴진다고 해도 변함없는 것은, 내가 '나로 있고 싶은 곳'이고, '나로 있을 수 있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곳에서 힘을 모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슬픔도 괴로움도 발견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이 모두 저에겐 또 다른 힘이 되겠지요. 그럴 거예요.



**다음 발행은 "<깊이에 눈뜨는 시간>  : 삶에서 나를 길어올리는 것(가제) "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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