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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May 09. 2020

겨울의 몸이 줄어간다.녹아간다.

메리 올리버 / 휘파람 부는 사람

작가는 자신이 아는 것, 잘 아는 것에 대해 쓴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갈망하거나 꿈꾸는 것, 억누를 수 없는 꿈속에서 몹시도 상세하고 가혹하리만큼 솔직하게 나타나는 것에 대해 쓸 수 있다.


메리 올리버 <휘파람 부는 사람>


주말 내내 손에 힘을 주고, 이것만이 지금 나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이라며 

책의 글자에 하소연하는 마음으로 이 책에 매달린 것 같다.

온전히 이 책의 글자에만 집중하지 못했던 것을 고백하는 것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용기내어 건네는 말이라고.


그동안의 그녀의 책과 또 다른 느낌이다.

목공으로 집을 지어보이며 월든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작은 집에서 몇 편을 썼지만 "나는 그 집을 짓기 위해 지었으며 그 집 문지방을 넘어 떠나버렸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늙어감에 대해 "우리의 시간은 이미 꽤 지났고, 남아 있는 시간은 아주 활동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우아하고 세심하게 보내야한다."라고 말한다. 쓸모없어진 목재들에 대한 애정으로 몸의 시간이 흘러버림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난 거북이와 집 안 지하실에서 바라본 거미에 대해 아주 세심하게 그려내고 살아가는 것의 경이로움을 그대로 풀어낸다. 


"거북이는 연못 바닥에서 오래도록 누워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 몸을 돌렸고, 근처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이자 공포도 슬픔도 없이, 지상의 신 가운데 으뜸인 식욕의 탐욕스러운 품 안에서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 모든 존재가 해야만 하는 것을 했다. 모든 것은 분해되고 대체된다. 지금 이 순간은 아니지만 곧 우리는 새끼 양이고 나뭇잎이고 별이고 신비하게 반짝이는 연못물이다." <휘파람 부는 사람> 43~44p


이 뿐이 아니지.


그녀는 에드거 앨런 포, 로버트 프로스트, 제라드 맨리 홉킨스, 월트 휘트먼의 삶과 작품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건넨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아진 작품들에 대해서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주고 싶었다는 듯이 세심하게.


책을 덮을 즈음이면 그녀의 새로운 글을 더 많이, 만날 수 없어진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고만다.


갈증난 감정에 물을 넣듯이 급하게 읽어나갔다. 다시 또, 읽었던 그녀의 책을 새로 펼쳐들겠지. 내가 미처 놓친 것, 글들을 다시 찾아내고 또 가슴이 두근거리고 싶어서.


"이제 초록 바다가 푸른 봄의 빛깔을 띠고 봄의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지치고 졸린 겨울은 긴긴 밤에 천천히 달을 윤나게 닦고 북쪽으로 물러난다. 겨울의 몸이 줄어간다. 녹아간다. 해묵은 수수께끼 뭉치가 또 한 해 풀리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휘파람 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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