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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May 13. 2020

공감과 이해. 그 사이에서

정혜신 <당신이 옳다>



모든 인간은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적응하는 독립적이고 개별적 존재다. 그 사실을 믿으면 함께 울며 고통을 나누면서도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힘과 근원이 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들이 지닌 경계를 인식해야만 모두가 각각 위엄 있는 개별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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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내 생각, 내 마음도 있지만 상대의 생각과 마음도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한다. 상대방이 깊숙이 있는 자기 마음을 꺼내기 전엔 그의 생각과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공감의 바탕이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






제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수많은 말의 의미가 위로가 될지 혹은 공감을 표하는 것으로 보일지 전혀 몰라서 우왕좌왕하던 제 모습이 내내 아른거렸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건넨 것은 위로였을까요? 혹은 공감이었을까요?



제 자신을 온전히 '공감'하며 '나의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요.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추상적일 수만은 없는 질문들이 계속 제 입안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각인되듯이 머릿속에 남은 것은 "당신의 감정"은 무조건 옳다는 말입니다. 그에 따른 그의 행동과 결과는 별개의 문제로 제쳐두고 말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만나는 모습들은 제가 그려왔던 수많은 이미지를 떠나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럽다가도 도무지 이해 못 하는 모습에서는 저도 모르게 욱하는 마음을 비추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나의 모습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생각한 기준에서 허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그 모습을 누르고 싶었습니다. '공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더더욱 몰랐으니 말입니다. 이제서야 조금 아이의 존재와 제 존재를 떨어트려놓고 생각해보는 연습을 해보게 됩니다. 제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존재하는지 가만히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여전히 아이와 티격태격하겠지만 조금의 틈을 비워두려 합니다.



사실, '적정 심리학'이라는 용어는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더니 이제는 우리가 '적정 온도, 적정 육아..'이야기하듯이 어쩌면 더 가까이 있는 본질적인 부분을 위한 용어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공감'과 '존재'. '솔직함'의 표현. 모든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라 쉽지는 않겠고, 완벽한 관계는 있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적어도 마음을 쓰다듬어줄 수 있는 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가족들과 인연들에게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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