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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Jul 05. 2020

그럼에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에마 미첼 / 야생의 위로


“음울한 계절이면 내가 찾아다니는 이런저런 사소한 광경이 있다. 미세한 식물학적 지표들, 결국에는 봄이 오고 말 거라며 나를 안심시켜주는 기분 좋은 신호들이다. 지난달에 나타난 사양채와 갈퀴덩굴 새순처럼 이 꽃차례 배아도 그런 신호 중 하나다.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밤은 짧아질 것이며 내 생각들도 다시금 밝아지고 가벼워지리라. 나는 한 동안 개암나무 곁에서 머뭇거린다.” 60p





우울증을 앓아 온 저자에게 봄을 기다리는 것만큼 큰 애달픔이 있을까.



그녀는 10월부터 그 이듬해 10월까지 1년 동안 자연 속 동물 혹은 식물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찾아다니기까지 하는 여정을 이야기한다. 각 월에 적힌 부제목들은 소리 내어 읽어보면 그 계절이 더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서 몇 번을 되돌아가 읽어 보곤했다.





낙엽이 땅을 덮고 개똥지빠귀가 철 따라 이동하다. 햇빛이 희미해지고 모든 색채가 흐려지다. 한 해의 가장 짧은 날들, 찌르레기가 모여들다. 무당벌레가 잠들고 스노드롭 꽃망울이 올라오다. 자엽꽃자두가 피고 첫 번째 꿀벌이 나타나다. 산사나무잎이 돋고 가시자두꽃이 피다. 숲바람꽃이 만개하고 제비가 돌아오다. 나이팅게일이 노래하고 사양채꽃이 피다. 뱀눈나비가 날아다니고 꿀벌난초가 만발하다. 야생당근이 꽃을 피우고 점박이나방이 팔랑거리다. 사양채잎이 돋고 야생 자두가 익어가다. 블랙베리가 무르익고 제비가 떠날 채비를 하다.





낙엽이 땅을 덮는 계절부터 시작해 제비가 돌아오고 꿀벌이 나타나고, 다시 제비가 떠날 채비를 하는 그 계절 동안 그녀는 계절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낸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남편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친구와 자연 속을 그대로 (그야말로 열심히) 돌아다니는 과정을 함께 하며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들을 모두 털어놓는다. 읽어 가면 갈수록 그녀의 용기에, 마음 다해 응원을 보내는 순수한 독자가 되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





나는 오두막집에서 걸어 나온다. 매년 이맘때면 그렇듯 햇살은 부드럽고 투명하다 첫서리가 내려 풀잎은 희고 고운 가루로 뒤덮였고, 날카로운 새벽 공기를 들이쉬면 콧구멍이 살짝 쓰라리면서도 기분이 좋다. 숲 언저리에는 곰팡이 핀 낙엽의 군침 도는 그윽한 냄새가 맴돌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제비도 떠나간다. 가을이다. 31p





책의 첫 문장에서부터 나는 이미 숲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그녀가 함께 건네주는 사진들을 보며 근사한 사진작가의 사진이 아니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된다. 조금 더 낮은 곳에 위치한 작은 것들을, 이미 우리의 시선 너머에 있는 것들조차 그녀에겐 마치 예술작품처럼 고이 모셔두기에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그리는 그림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한 손끝이 느껴졌다. 다 읽고 책을 덮고 나서도 여러 번 들쳐보며 그림만 찾게 하기도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나에게 찾아온 변화는 그늘진 곳, 작은 돌들의 틈새 사이사이에 있는 작은 풀, 꽃, 심지어 이끼들조차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무를 심하게 흔들어대는 바람이 다시 만들어내는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와 참새들이 높낮이가 다른 음들이 만들어낸 울음소리를 내는 그 모든 것들이 예사로 넘어가지지가 않는 것이다. 아파트 높은 곳에서 일상을 지내니 나무들의 꼭대기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내려와서는 다시 아래에서 나무를 올려다보며 새소리에 이끌려 눈을 이리 저리 굴려보고 새 둥지를 찾아보게도 되는 것이다. 위에서 바라본 나무는 종이 위 그림처럼 형태를 이루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래에서 바라본 나무는 생동감 있게 바로 곁으로 다가오니 아이가 산책을 바라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도 옆에 두고 다시 휘릭 넘기는데, 여러 번 멈칫거린다. 작은 그림에. 사진에. 또 내가 밑줄 그은 부분들을 또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읽혀질 1년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우울증이 낫는다는 확실한 희망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연을 찾아다니며 그녀는 삶을 살아가리라는 것을 안다. 그녀의 살아감을 바라보며 어떤 목적만을 위하는 것에서 벗어나 삶에의 희망을 절실하게 품게 되어가니 그것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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