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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Aug 11. 2020

내가 코로나 블루를 앓을 줄이야

이제 그만

 코로나19라든가 C-19라든가 COVID-19 같은 단어 이제 너무도 지긋지긋하지만, 한 번 더 언급해야겠다. 나는 코로나19바이러스에 맞았다. 아니, 처맞았다.


코로나19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또는 치료를 위해 고생하신 의료진의 발끝의 끝에 닿을 노력이라도 했던가?
― 아니오.
코로나19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아 대개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을 미루거나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는가?
― 아니오.


 그럼 도대체 왜?


 올해 1월로 돌아가 보자.




지금은 꿈만 같아진, 평온하고 사랑스러웠던 런던여행

 작년과 올해에 걸친 런던 여행은 그저 사랑스러운 기억의 반복이었다. 런던 여행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설 연휴가 찾아왔고, 가까운 후쿠오카에 시가 어른들과 함께 잘 다녀오기도 했더랬다. 몇 년 전에 가고 그 맛을 잊지 못해 내내 그리워하던 초밥 집에서 몇 년 만에 다시 반가운 그 맛을 보았고, 날씨가 조금은 흐릿했지만 그래도 다 괜찮았다.


 그리고는 바로 코로나19바이러스가 터져버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불리던 지독한 이 바이러스는 금세 ‘코로나19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로 재명명되고 일상을 빠르게 잠식해갔다. 나의 일상 역시 빠르게 좀먹혔다. 어, 하는 사이 나는 그만 코로나19에 허우적대다 우울의 펄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순식간이었다.


 올 한 해 계획했던 일들이 많이 있었다. 코로나19는 그 일들부터 차례로 어그러뜨렸다. 하기로 했던 일은 벼랑 끝으로 떨어져 버렸고, 할 계획이 없던 일들이 몰아닥쳤으며 할 수 있었던 일은 하기 더 어려워졌다. 회사에 가기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떻게든 가지 못할 이유가 생겼으면 하고 빌었다. 맹장이라도 터졌으면 했는데 쓸데없이 몸은 멀쩡해서 구실 따위 생겨주질 않았다.


 살아온 날들을 뒤적여봐도 이렇게 우울했던 때가 없어서, 나는 바보같이 우울에 맞으며 혼자 괴로웠다. 괴로워했다. 정신과 치료라도 받으면 좀 나아질까, 약물의 힘이라도 빌려야 할까 싶었는데 뭐든 다 하기 싫을 때여서 정신과를 찾아가는 일조차 엄두를 내기 버거웠다. 심장이 며칠이고 시도 때도 없이 쿵쿵거렸다. 반경 5m 안의 사람들이 내 심장소리를 다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요일 아침이면 내일부터 닥쳐올 새로운 주간이 끔찍하게 싫었다. 월요일 출근길에 가장 그리워했던 건 금요일 저녁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선택형 집순이*인데, 코로나19로 외출마저 차단되니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져갔다. 아홉 번 출석하다 딱 한 번 결석했을 때 출석체크를 당하는 운 나쁜 사람이었기에 외출하기가 여간 무서운 게 아니었다. 나갔다 혹시 병을 옮아 오거나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는 새 피해를 주게 되면 어떡하지, 외출했다가 괜한 사달을 내기보다 집 속에 묻혀있기를 택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비수기에 해외여행을 떠나보려고 야심 차게 계획을 세웠던 해이기도 했다. 코로나19의 여파가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항공사는 단항 결정을 내렸고 예매해둔 티켓들은 무참히 취소 처리됐다. 눈앞에 베네치아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서 그 물결에 일렁이는 색채를 감상하고 있을 줄 알았던 5월 역시도 마스크에 얼굴을 욱여넣은 채로 지나갔다. 우울함의 초입에선 내 기운을 어떻게든 북돋아 주려고 애썼던 남편까지 한참이 지나자 지친 모습을 보였으니, 상반기 내내 나 스스로가 정말 지독했던 우리 집 말썽꾼이었던 셈이다.


이런 식으로 챙겨준 출근만 수십 일 치. 고마웠어.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에 들어가 머리에 물을 묻혀보자, 그것부터 시작했다. 출근 시간을 더도 덜도 말고 딱 5분만 앞당겨보자, 그게 그다음 스텝이었다. 어려웠지만 여러 번의 실패와 수백 수천 번의 셀프-다독임 끝에 조금씩 힘을 덜 들일 수 있었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그간 조금도 진도를 나가지 못해 미뤄두기만 했던 브런치 작가 등록도 할 수 있었고, 나의 우울함을 행복의 연료로 삼지 않을 친구를 만나 쾌활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어제도 회사에 가기는 싫었다. 오늘도 싫었고, 내일도 역시 싫을 것이다. 하지만 출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되지 않더라도 시도는 할 수 있는 마음. 시도만 하는 것의 대단함. 결과를 떠나 과정의 작은 조각 하나하나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칭찬해줄 수 있는 관대함. 우울에 허우적대는 스스로에게 ‘이제 그만’, 하고 잔소리할 수 있는 정도의 에너지.



 코로나 블루로 내 안의 우울감을 미친 듯이 쏟아내고 난 이런 걸 얻었다.


 어떤가, 참…… 시시한가?**


 


* 주로 집에 있는 것을 편안해하고 바깥에 나가는 것 자체가 일이므로 한 번 외출할 때 오만 데 쏘다니며 몇 탕씩 볼일을 보고 오는 스타일

** 강화길 작가의 ‘음복’에 나온 구절에 대한 오마주. 저따위가 오마주라는 걸 해도 괜찮은지는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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