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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Aug 25. 2020

날카로운 북가좌동의 기억

분명히 제 정신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북가좌동이라는 동네를 아시나요? 저는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합니다. 다녀온 적은 있지만 정말 다녀온 게 맞는가 하면 또 그건 아닌 것 같고요.


  때는 2019년 10월 31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시대의 사랑 받는 작가 이슬아 님과 함께 저녁을 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어요. 그건 선착순 응모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신청서를 누군가 꼼꼼히 살펴본 뒤 참여 인원이 추려지는 방식이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올라탄 사람의 안도감에 견줄 바는 아니겠지만, 그 모임을 하게 될 열 명 안에 제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문자를 받은 그날 밤 얼마나 신이 났었는지 모릅니다.

  어디서건 접근성이 후진 곳에서 근무하고 있던 저는 그날 이른 퇴근을 준비했어요. 부리나케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물 건너 어쩌고 저쩌고 끝에 고지된 그 장소에 당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슬아 작가님은 통화 중이셨어요. 어디 오가며 얼굴을 뵌 적은 있지만 이렇게 근거리에서 얘기할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인물과 마주한 경험은 다시 떠올려봐도 설렘만이 가득했습니다.


  기다랗고 제법 널따란 원목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작가님을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앉아 다른 분들이 마저 도착하기를 기다렸어요. 모두가 자리에 둘러앉고, 비건 메뉴로 알차게 꾸려진 저녁 식사가 시작됐습니다. 매콤한 맛이 살풋 나는 파스타도 있었고, 와인을 잘 모르지만 그날 곁들여진 와인에선 근사한 맛만이 났습니다. 떫은 기운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식사를 함께하며 서로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열 명, 작가님과 주최 측까지 더해 열두 명의 사람들끼리 나눌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말하고 귀담아 들었습니다. 화법이 거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그곳의 이야기들은 그날 식사를 떠받치고 있던 원목 테이블만큼이나 단단한 따뜻함이 맴도는 듯했어요. 아아, 오늘 이 자리를 난 참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거야, 속으로 그런 생각을 여러 번이나 했습니다.

  정말로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생겨줄 거라곤 생각 못 했죠.


  다음날 저는 전례 없는 두통에 강제로 잠에서 깨어납니다. 머리를 누군가 3초 단위로 깨부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어요. 집에서 깼다는 사실만이 천만다행의 위안이었습니다.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거든요. 반려인의 눈동자는 차가웠고요, 속은 메스꺼웠고, 어젯밤 10시 이후부터는 삭제된 것처럼 기억이 말끔하게 없었고, 카드지갑이 없었습니다. 30일간의 금주령이 내려졌고요.

 그 무렵 저는 독립출판으로 펴낼 제 책을 마무리하는 단계였고, ‘4주 동안 책 만들기’의 마지막 주차 수업이 그 주 금요일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카드지갑엔 사원증이 들어있었어요. 사원증을 잃어버리면 보안 위규가 되고요. 임시로 발급받은 사원증과 함께 정신머리도 임시로 발급받은 채로 엉겁결에 금요일을 지나 보내고 메스꺼운 속을 부여잡고 디자이너를 만나 표지를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 주차 수업을 날려 보낼 순 없다는 어설픈 책임감으로 해방촌에 도착해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동기들과 가벼운 뒤풀이도 했어요.


 그래서 카드지갑은 어떻게 됐냐고요? 사실 금요일 아침, 그러니까 수업을 하러 가던 아침에 저는 전화번호 하나를 반려인에게서 받았습니다.


 ‘이분 아니었으면 너 어제 집 못 왔어, 감사하다고 꼭 연락 드려.’


 그분은 북가좌동에 거주하시는 에인절이셨어요. 전날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아 여쭈었더니 그저 같이 버스를 탔던 사람인데 종점 도착하고서도 못 내려서 기사님들이 내려주셨고, 그러고도 위험하게 행동하기에 교회 앞 벤치로 저를 데려다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수치스러움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황망함을 감추고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마무리하려는데 카드지갑의 행방도 알려주셨습니다. 그 카드지갑, 어제 앉아있던 돌 벤치 밑에 떨어뜨려서 주워주시려고 했는데 틈 사이로 들어가버렸다고 하시더군요. 충신교회 앞 돌 벤치 중에 버스 종점 기준 맨 왼쪽, 맨 앞 돌 벤치라고요. 그분은 정말 에인절이 맞았습니다.




  술이 완전히 빠져나간 토요일, 저는 북가좌동에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날은 도대체 어떤 버스를 타고 이 동네에 다다랐던 걸까요, 지나치는 풍경이 모두 생경해 저를 자꾸만 머쓱하게 만들었어요.


  충신교회는 버스 종점과 참 가까운 곳에 우직하게 서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에 내가 왔었다고? 말도 안 돼……. 더더군다나 카드지갑이 들어가 버렸다던 돌 벤치의 틈은, 너무도 비좁아 손가락 하나도 들이밀 수 없는 협소한 틈이었어요.

  에코백 안에 구부러뜨린 채로 가져왔던 세탁소 옷걸이를 꺼냈습니다. 교회 앞을 지나다니는 행인 분들의 의아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맨 왼쪽 벤치 틈에 옷걸이를 넣었다 빼며 해괴한 사투를 벌였습니다. 완연한 가을이었는데 등에서 땀이 났습니다. 창피함이 정수리 끝까지 찼는데 카드지갑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다른 벤치들에서도 사투를 이어가 보았지만 끝끝내 카드지갑은 나타나 주질 않았습니다. 그래, 이 정도면 누구라도 카드지갑은 못 찾겠다, 그만 포기하자, 일어나려다 처음 옷걸이 사투를 시작했던 그 벤치 앞에 다시 앉았습니다. 한 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진짜 일어난다. 몇 분 정도 더 그러고 있었을까요, 손에 쥔 옷걸이 끝에 뭔가 툭, 걸리는 소리가 납니다. 설마?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카드지갑이 그 비좁은 돌계단 틈 사이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옷걸이에 딸려 나오는 겁니다.


충신교회. 맨 앞에 보이는 저 틈에 가져간 옷걸이로 몇십 분 씨름한 끝에, 카드지갑이 뿅 나와줬다.


 증산역 옆 불광천 물결이 그렇게 따사로와 보일 수 없는 토요일 오후였어요. 역으로 되돌아가며 아담한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되찾은 카드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커피값을 치렀습니다. 그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비로소 해장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생애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해장이었어요. 시끄러운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다시는 이 동네에 올 일이 없을 것임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한참 주행과 정차를 반복한 끝에 열차에서 내렸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다 져도 되지만 술에만은 이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비워진 테이크아웃 컵을 역사 안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귀갓길은 모처럼 산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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