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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Sep 08. 2020

카카오, 어디까지 갈래?

카카오와 김이나라 가능한 웹예능 얘기

 주식 얘기는 아니다. 아 물론 주식 얘기도 하고는 싶다. 10만 카카오가 40만 카카오가 될 줄 누가 알았겠냐마는, 어쨌든 지금의 나처럼 투자할 돈 따위 없는 소시민에게 주식 얘기는 떠들어봐야 마음만 아파지니 건너뛰고, 조금 다른 이야기로.


 굉장히 믿고 의지하는 지론이 있는데,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확장되는 세계’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내가 좋아하던 가수 요조 덕분에 나는 그가 운영하던 계동의 ‘책방무사’를 갔었고, 그 덕분에 독립출판이 뭔지 처음 알게 되었으며, 그러다 어쩌다 나 스스로도 독립출판으로 책을 펴내게 되었다(!). 결론이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책, 그 사람이 지향하는 어떤 문화나 주의(-ism) 같은 것들은 단지 그 사람으로부터 뻗어 나온 어떤 가지라는 이유만으로, 수백만 단어로 설득해도 할 수 없던 설득을 아주 단숨에 해내곤 한다.


 이번에 발견한 그 가지는 김이나 작사가로부터 뻗었다. 로엔과 멜론, 멜론과 카카오가 그를 카카오티비로 인도한 걸까. 김이나 작사가의 인스타그램에 얼마 전부터 ‘톡이나 할까?’라는 웹예능을 카카오티비에서 론칭한다는 걸 알게 됐다. ‘톡이나 할까?’라니. 김이나 작사가의 이름을 센스 있게 잘 살린 타이틀은 일단 합격. 그리고 첫 번째 게스트는 박보영이었다.


게스트를 기다리는 호스트 김이나 작사가


 2회 게스트인 박은빈 편까지 보고 왔는데, 어라 이 예능, 생각보다 마력이 있다.


 대략 15분 길이의 영상에서 특이한 점은, 호스트와 게스트 둘 다 육성 대화를 후반부까지 고이 아껴놓고 대면하되 카톡으로만 대화한다는 점이다.

 호스트 김이나 작사가의 프로필 사진과, 상대 게스트의 실제 휴대전화와 프로필 사진(아마도)이 보이고 카톡으로 인사하고, 그간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눈다.



텔레그램이라면 할 수 없는 예능


 텔레그램이라면 이런 예능을 한국에서 할 순 없었을 것이다. 카톡이니까 할 수 있는 예능, 한국 채팅앱 시장을 독점 중인 카톡의 자부심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박보영 씨는 어린이재단과 합작하여 만든 본인의 글씨체를 카톡 글씨체로 쓰고 있고, 아이폰을 쓴다. 김이나 작사가는 기본 글씨체를 쓰고, 역시 아이폰을 쓴다. 2회의 박은빈 씨는 삼성의 것으로 보이는 휴대전화를 쓴다. 이후에 등장할 게스트들은 모두 이런저런 휴대전화를 쓰고 이런저런 테마와 다양한 글씨체를 쓰겠지만, ‘카톡을 쓴다’는 대전제는 모두에게 통용될 것이다.


 다시 ‘톡이나 할까?’의 구성으로 돌아와서, 호스트와 게스트는 십여 분 동안 카톡으로만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모든 과정이 꽤나 자연스럽다. 육성이 오갔으면 싶은 타이밍에도 카톡으로만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때가 있어서 아주 약간 답답스러운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물 흐르듯 편안하다. 매끄러운 편집이 이를 가능케 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문자로 대화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 능숙해지고 익숙해진 시대라 더 그렇다. 말보다 메일을, 메일보다 문자를 편하게 여기는 밀레니얼과 Z세대의 게스트에겐 아마 그래서 더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묘하게 빠져드는 카톡 토크쇼. 중간중간 새어나오는 호스트 김이나 작사가의 위트.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평소 가지고 있던 이미지나 조카의 동영상, 가벼운 밈들, 짤들, 이모티콘이 적재적소에 방출된다. (육성으로 웃음소리나 간단한 감탄사 등은 가능한가 보지만) 말로 말을 못 하니까 카톡 이모티콘을 쓰면서 대신 웃고, 대화하다 오랜 시간이 들 때 깜빡이는 커서도 실제 화면 녹화본으로 여지없이 드러내 준다. 흡사 카카오톡으로 하는 소개팅인 것도 같고, 각자 서로의 공간에서 친밀함을 쌓아가는 것 같기도, 게스트와 나의 카카오톡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김이나


 이 모든 대화를 주도하는 것은 김이나 작사가다. 〈우리 결혼했어요〉에 가인과 친한 작사가로 등장해 수년간 방송가와 유튜브, 오프라인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쌓아온 토크쇼 호스트로서의 역량이 십분 발휘되는 게 느껴진다.

 그는 처세에 능하면서 사람을 불쾌하게 하지 않는 선을 아주 잘 유지하는 밸런스로 똘똘 뭉친 자질 있는 호스트다. 더불어 동성인 여자 연예인에게는 ‘친해지고 싶은 수더분하고 본업까지 잘하는 멋진 언니’, 추측건대 남성 연예인에게는 ‘가까이 지내고 싶고 친해져보고 싶은데 까탈스럽지 않고 털털하면서 예쁜 누나’로 탁월한 포지셔닝을 한 장본인이 아닌가. 그라면 앞으로 어떤 게스트를 맞더라도 그만의 탁월한 언변으로 모든 대화들을 자연스럽고 불안하지 않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거기에 게스트의 사소하지만 팬이라면 넘기지 않고 꿰뚫고 있을 만한 포인트들에 대해 사전학습이 많이 되어 있어 보이는 점 또한 플러스다.


이건 그냥 소울트리로서의 사심 캡쳐. (박보영 씨는 잘 알려진 박효신 씨의 팬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카톡 화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무음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기에도 알맞다. 곱게 촬영해 웹드라마 톤으로 해준 듯한 톤 보정도 스무스하게 시야에 잡힌다.


 하루의 사적인 대화 중 가족을 제외하고는 50% 이상이 카카오톡으로 전달되고 있지 않을까 싶은 이 시기지만, 카카오가 카카오티비로 이런 예능을 전한다는 건 일견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십 년 전, 이런 예능이 나올 줄 예상할 수 있었던 사람은 별로 없었을 테니까.



카카오, 그래서 진짜 어디까지 갈래?


 아직까지는 흥미진진하다. 다음 게스트가 기다려지고, 김이나 씨와의 텍스트-케미스트리가 어떻게 터질지 궁금하다. 말미에 게스트와 합작하는 작사 체험도 게스트의 성격이 묻어 나와 소소한 재미가 있다.

 남들에겐 어떨지 몰라도, 일단 나한테는 합격.




‘톡이나 할까?’ 박보영 편 ↓

 https://tv.kakao.com/v/41209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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