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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Oct 08. 2020

너와 이혼까지 생각했어 (下)

 나만 이혼 안 하고 잘 살고 싶어 하나? 나에게 호떡과의 결혼 생활은 너무나도 소중해서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깨고 싶지 않은 것인데 호떡에게는 왜 내 잦은 실수의 반복이 영영 헤어져 살고 싶을 정도로까지 번지는 걸까? 곰곰이 생각하려니 자꾸 눈물이 났다. 나에게 화가 났을 때 옆에서 훌쩍거리면 보통은 호떡이 화를 내왔던 이력이 있어서, 급하게 쪽방으로 위치를 변경했다. 옷장에 둘러싸여 모로 누워 있으려니 생각에 생각이 부정적으로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마음속으로 호떡에게는 들리지 않을 말을 계속 건넸다.


 너 나 없이 정말 살 수 있어? 주말에 일어나서 볼 맞대고 껴안고 누워 있는 그 평온한 순간들이 다신 없어도 괜찮아? 한 손인 것처럼 잡히는 내 손을 더 이상 잡아볼 수 없어도 정말 괜찮은 거야? 정말?

 많이 싸우고 나서, 특히 내 반복되는 잘못들로 말미암아 일어난 싸움의 끝에 네가 끝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마다 심장이 산 채로 꺼내져 절삭되는 것 같아.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해. 네가 같이 있는 거실에서 내가 베란다로 갑자기 뛰쳐나가서 죽어버리는 상상. 바닥에 떨어져 피로 뭉개진 내 몸을 안고 네가 오열하는 상상. 네가 상처 주는 말을 한 날 밤, 잠든 너 몰래 침대에서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콱 죽어버리는 상상. 다음 날 아침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나를 보고 절망하는 네 얼굴 같은 거.

 네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는 아니지만, 가끔 정말 저런 생각을 해. 내 마음은 바위 같아서 마모되는 속도가 늦긴 하겠지만 지금도 천천히 부식되고 마모되는 중이야.

 부디, 내가 죽일 만큼 미워도 끝이라는 말까지는 가지 말아 줘. 딱 끝을 한 보 앞둔 지점까지만 가줘. 나도 네가 죽일 만큼 미워져도 네가 날 때리거나, 다른 여자랑 바람이 나거나 하는 잘못이 아니라면 끝을 언급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아, 그런데 최근엔 상상을 좀 바꿨어. 너무 죽는다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치닫는 것 같아서 말이야. 네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두더지 게임기에 네 머리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나는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라고 있는 신경질 없는 신경질을 다 내면서 네 머리를 뿅망치로 세게 후두려 처넣어버리는 상상. 네 마디 한 세트의 저 말을 한… 삼천오백예순 번쯤 반복하고 나서 극심한 통증에 울어버리는 너를 보는 상상.

 다음에 또 그런 소리 해라, 진짜. 상상 속에서 네 머리를 오만 번쯤 내려쳐서 땅 속으로 꺼지게 해줄 거야. 진심이야.


 그런 말을 속으로 건네며 누워 있으려니 호떡이 쪽방으로 건너왔다.


 “침대에서 자.”


 일어나지 않고 버티면 더 안 좋을 것임을 알고 있어서 일어나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누워서도 한참은 잠에 들지 못했다. 계속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울다가 코가 막혀서 화장실에 가서 코 풀고 울고, 다시 들어와서 또 눈물로 베개를 적시다가 잠들었다.




 호떡과 싸운 다음 날은 늘 공기가 축축 늘어져서 출근 준비를 하는 데도 힘이 들어가는데, 차라리 일찍 준비를 하고 집에서 꺼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조금 일찍 일어나 분주히 움직여 나왔다.


 회사에서는 일이 되는 둥 마는 둥. 집중되지 않는 머리로 모니터 앞에 멍하게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동기들에게 메신저로 물어나 볼까. 너는 왜 똑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호떡이 그렇게 되게까지 만들었냐, 그래도 자꾸 끝이라고 하는 건 잘못하긴 했네. 그래도 네가 잘못해서 시작된 일이니까 네가 더 잘못하긴 한 것 같아. 너희 둘 다 서로에게 서운한 게 많이 쌓인 건 맞는 것 같으니 둘이 어떻게든 진지하게 얘기하는 시간을 가져서 잘 좀 풀어봐라, 야.

 치우침 없이 상황을 진단해주는 동기들에게 알겠다, 하는 순간 호떡에게 메시지가 왔다.


 ― 어제 잠은 좀 잤어?

     말 너무 심하고 나쁘게 한 거 미안해


 딱 여기까지 읽고 눈물이 확 들어찼다. 아, 위험하다. 눈물각이다. 황급히 화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나 스스로 지쳐 있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 못 하고

     자꾸 극단적으로 말하게 되네

     나랑 같이 행복하게 살자고 결혼한 사람이

     나 때문에 작은 방에서 그렇게 누워서

     울고 있는 거 보면 나도 마음이 많이 아파


 메시지가 연이어 도착했다.


 ― 그치만 나도 너 상황까지 생각하면서

     나 스스로를 달래기에는 너무 지쳐있다는 걸

     조금 인지해줬으면 좋겠어

     그래도 너가 듣기 싫어하는 말

     계속해서 미안해..

     앞으로 그런 식으로는 말 안 할게

     너무 심하게 해서 미안해


 간밤에 옷방에서 쪼그리듯 누워서 혼자 울다가, 화장실에 가서 또 울다가를 반복했던 게 생각나서 또 한 번 울컥. 그래도 호떡에게 이것으로 모두 위로받았다고 생각했다. 호떡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잘못한 거 알고 있고, 그간 그래도 나름 조심한다고는 했는데 잘 안 됐다, 앞으로 더 조심하겠다고 답장했다. 호떡은 다음부터는 울더라도 침대 안에서 울라고 했다. 서로 노력하자고, 우리 잘 왔잖아, 라며. 곧 예정된 이사 후 새로운 집에서 새롭게 잘 시작하기 위해 좋은 마음으로 같이 나아가자고. 그래, 그래야지. 눈물을 찍어내던 휴지를 변기에 버려 내리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눈가가 붉어져 보기 흉해진 얼굴을 거울 너머로 들여다보며 습습후후, 심호흡을 크게 쉬어주곤 찬물을 묻힌 손으로 뜨끈한 눈가를 다독였다.


 처음 호떡과 만난 날을 생각했다. 우리 처음 만난 날, 머쓱한 웃음으로 존댓말로 말을 걸던 호떡. 말을 놓으라고 수 차례 얘기했음에도 말을 놓지 않고 거리감을 두던 그가 마음을 내려놓고 반말로 친근하고 어리광 섞인 인사를 건네던 날 강의실로 쏟아져 들어오던 아침 햇살.


 우리가 서로 연인으로서 만나기로 하고서 본가에서 돌아오는 날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호떡, 기차역에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꼭 붙잡고 있던 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농구 코트 옆 벤치에 앉아서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면서도 그저 즐거웠던 기억들. 다시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이 맑고 청량하고 순수했던 우리가 설레는 마음으로 만났던 날들. 나와 함께라면 거창한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족할 것 같다고 써놓았던 호떡의 싸이어리의 그 정갈한 돋움체 같은 것들. 이제는 더 이상 행방조차 확인할 수 없는 피쳐폰을 쓰던 시절, 누나랑 같이 있다가 와서 옷에서 누나 냄새가 나,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보고 싶다, 같은 간지러운 말들이 하루에도 십수 번씩 쏟아지던 때의 기억들.


 그리고 어느덧 흘러온 지금을 짚어본다. 아픈 사람 이마를 짚어 열을 재듯, 우리가 서 있는 날들 위의 온도를 재어본다. 조금 서늘해졌지, 조금은 차갑기도 했었지. 그럼에도, 이런 서늘해진 온도의 나날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채워가는 부부로서 우리가 그리는 일상의 무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다른 누구와도 같을 수 없고 우리 외의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우리만의 하루하루를 겹겹이 채워 온 천 몇백 일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자다가 내가 죽는 꿈을 꿔서 엉엉 울던, 땀에 젖은 호떡의 얼굴을 닦아주고 안아주던 일, 늦도록 늘어지게 자다가 말고 갑자기 내 손을 찾아 움켜쥐고 평온한 잠을 이어 청하던 호떡을 보며 알 수 없는 뭉클함에 마음이 일렁이던 어떤 주말에 대해서도.


 역시, 앞으로도 꾸준해야겠다. 앞으로도 성실해야겠다. 이상하리만큼 많이 부딪치고 양보하지 못하는 서로이지만, 우리처럼 이상하리만큼 서로를 놓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 지구상엔 왠지 없을 것만 같다는 착각에 기꺼이 빠진다.


 우리 이혼 같은 거 생각만(차마 양심에 찔려 생각도 안 한다고는 못함) 하자. 서로가 힘들고 버거워도, 이혼을 정말 하지는 말자. 이렇게 치고받고 싸워도 아직 서로가 필요하니까. 내 일상은 너를 이따금씩 간절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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