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가 얄팍한 최후의 증인
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예민함
모두에게 꽃다운 나이인 스물여섯에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스물넷 다섯에 척척 회사생활을 시작하던 친구들을 보며 늦은 줄로만 알았는데 사회에 나가보니 스물여섯은 한낱 애송이에 불과한 나이였다.
20대 여성이 고군분투하기에도 벅찼던 영업 현장이 하필 내 사회생활의 첫 무대가 될 줄은 몰랐다. 할 줄 아는 것과 아는 것이 많았던 대학교 졸업반에서 뛰어 내려와 사회로 착지하자마자 할 줄 모르는 것이 속속 튀어나와 나는 금세 겸손을 배워야 했다.
부서 안에 애송이 임우유를 도와줄 사람은 몇 없었다. 여자 나이 크리스마스 케이크 운운하던 질 나쁜 사수에겐 정이 애초에 떨어져 버렸고, 신입이 고생을 하든 말든 제 알 바 아니라는 태도가 선명히 드러났던 과장 둘도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마지막 남은 왕년에 잘 나갔던 ‘라떼’ 만년 과장, 그나마 이분이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 애쓰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맡은 매장의 도면을 그려보라고 했다. 우리 회사 제품들과 경쟁사 제품들이 어떤 형태로, 어떤 가격대를 중심으로 배치돼 있는지 볼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거랬다. 귀찮을 정도로 판매 상담사들에게 연락을 해보고, 사적으로 친분을 쌓아 신뢰를 받는 영업사원이 되어 보랬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과장님이 시켰던 것들을 대부분은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 않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일지도 몰랐다. 8~90년대 영업 현장을 진두지휘하다 마케팅 쪽에서도 제법 입지를 두텁게 다져가던 라떼 과장님은 그때 그 시절 아날로그 감성 덕지덕지 묻은 영업인 백서를 내게 그대로 이식하고 싶어 했고, 나는 그렇게까지는 영업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과장님은 종종 내게 아쉬운 내색을 보이셨으나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더 나아지고 싶지도 않았다. 얼른 이 더러운 영업 현장을 떠야지, 그렇게 주억거리고 말 뿐이었다.
정기 인사를 몇 주쯤 앞둔, 점점 추워지던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적막한 사무실 속에 라떼 과장님을 둘러싼 공기가 유독 뒤숭숭했다. 라떼 과장님의 근속기간은 30년이 다 되어가는 중이었다. 30년을 채우고 여전히 과장이기란 회사와 라떼 과장님 모두에게 쉽지 않았을 터였다. 회사가 먼저 선수 쳐 라떼 과장님을 회사에서 내보내기로 한 모양이었다. 우울한 인사철의 공기 속에 인사과장님은 송별회 장소 예약과 동시에 업무적인 이별 준비를 척척 수행하기 시작했다.
송별회 자리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울렁거렸다. 중3이라던 라떼 과장님 외동딸도 생각이 났다. 대학교 학비까지 뒷바라지하시려면 제법 벅차실 텐데, 겨우 쉰쯤 된 나이에 벌써 퇴직이라니. 골백번 생각해도 영업인은 되기 싫었다. 그러나 내 신입 시절을 든든히 백업해주던 유일한 라떼 과장의 퇴직 소식은 사회초년생인 내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과장님 걱정을 조금 하던 나는 회식 자리에서 일렬로 서서 라떼 과장님에게 송별사를 건네던 중에 왈칵 눈물을 흘려버렸다.
그 순간 갑자기 라떼 과장 손으로 내 손에 깍지가 끼워지더니 축축한 감촉과 거뭇한 담배 냄새가 같이 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등 위에 닿은 것은 라떼 과장의 입술이었다.
도대체 이 라떼 과장 새끼는 내가 운 걸 뭐라고 생각했던 거지? 내가 뭐 연정이라도 품고 있는 줄 아셨나? 설사 그런 착각을 했다고 해도 내 손에 깍지를? 손등에 입술을?
불쾌한 의문에 깔려 죽을 때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다음 날부터 회사 사람 그 누구의 꼴도 보기 싫어졌다.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별 좋은 일도 아니었지만- 손등을 벅벅 씻어내고도 불쾌함이 가시지 않았던 그날 그 송별회 자리를 나는 가끔 떠올려낸다. 신입 시절 더럽게 힘들던 영업 현장은 이미 탈출한 지 서너 해가 지났고, 어느덧 직무를 바꾸고도 몇 년 치의 연차가 쌓였다. 이제 어느덧 9년 차 직장인이 된 오늘의 내게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순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인사팀에 신고하러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 몇 해 그날을 떠올릴 때는 그 불쾌함에 대한 복기가 지배적이었다. 요즘은 부쩍 다른 생각을 한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진 채로 굳은 내 앞에서 마주했던, 소주나 마시고 고기반찬이나 주워 먹는 팀 사람들의 태연함을. 내 앞에서, 늙은 과장의 축축한 입술이 여성 사원의 손등에 닿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 따위 안 하던 사람들을. 그런 일들 따위 아무런 자극도 되지 못하는 두꺼운 피부를 가진 십여 년 차 과장님들을. 예민하게 감각하지 않고도 세상만사 편하게 사는 그들의 태연하고 무던한 표정들을. 움직임이 둔했을 뇌세포들과 굳이 기민하게 반응할 필요 따위 없던 느릿느릿한 근육들을.
모두의 피부가 두꺼울 수 없다는 것은 다소 애석하다. 주로 나와 비슷한 여성들이 그 사실을 인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번번이 놓인다는 것도 슬픈 일이다. 그러나 9년 차 직장인은 딱 반 발자국 더 내딛기로 마음을 고쳐 먹어본다. 연차만큼 두꺼운 피부를 갖지 않기로. 내 앞의 누군가의 불행을 감각할 수 있는 예민함을 버리지 않기로. 조금 더 나은, 믿을 만한 동료가 되어 주기로. 누군가의 불행을 막아줄 순 없어도, 불행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